파라노이드 파크 - 서늘하게 가슴을 적셔오는. 영화




이 영화를 보고,

< 한 소년이 있다. 언뜻 별 탈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열 세살짜리 동생이 스트레스로 인해 자꾸만 먹은 것을 토해낸다. 부모님의 불화로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이다. 소년은 토하거나 울거나 하지는 않지만,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한창 감정의 기복이 심할 나이지만 웃거나 기뻐하거나 화내지도 않는다.

엄마나 아빠와의 대화는 건성건성 넘긴다. 영화 속에서 부모님의 얼굴이 제대로 비춰지는 경우가 드물 정도다. 적극적인 여자친구도 있지만, 둘 사이의 대화 역시도  빈 껍데기에 가깝다.  소년은  타인에 대한 관심을, 소통을 위한 노력을 오래 전에 멈춰 버린 것 같다. 오로지 관심 있는 것이라고는 어떻게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까다. 바깥이 얼마나 시끄럽든, 소년은 적당히 외면하고 적당히 대꾸하면서 자신의 좁다란 세계를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소년은 처녀딱지를 떼고 싶어 안달이 난 여자친구의 소망을 이뤄주기보다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데 열중한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사람을 바꿔놓기 위해 달겨드는 법이다. 소년은 '미처 준비가 안 됐는데'도 친구를 따라 파라노이드 파크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리고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 누군가가 소년 때문에 죽게 된다. 자신을 간섭하는 사람을 그저 살짝 밀쳤을 뿐인데 결과는 끔찍하다. 죽어가는 사람과 눈을 마주친 소년의 삶은 이제 예전과 같을 수가 없다. 소년은 여자친구와 애정 없는 섹스를 한다.

다행히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친구에게 이별의 뜻을 알린다. 그리고 (영화에서 누군지는  자세히 밝히지 않지만) 소년에게 관심(이성으로서의 관심도 있긴 하지만서도)을 갖고 소년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친구와 가까워지게 된다. 소년에게 말 못할 대사건이 생겼음을 눈치챈 친구는 해법을 알려준다. 글을 써서 솔직하게 다 털어낸 다음, 태워버려.

그래서 소년은 길고 긴 글을 쓴다. 그리고 다 쓴 후엔 태운다. 여전히 소년은 무표정하다. 하지만 소년은 이제 좀더 어른이 되었다. >


.....라고 나는 알아먹었다. 물론 포스터에서 일말의 포스가 느껴지듯, 감독이 그닥 친절하지는 않다. 영화를 보고 나서 몇 시간째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도 왜 감독이 주인공을 스케이터 보이로 설정했는지는 영 모르겠다. 아마도 진짜 스케이터들이라면 알 것 같은데.

그렇지만 이건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엘리펀트>가 그랬듯, <파라노이드 파크> 역시 가슴을 서늘하게 적신다. 무표정한 주인공들이 겨우 몇 마디 내뱉는 영화들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안쓰럽고 사랑스럽다. 감독은 조용히 그들의 등을 쓰다듬는다.

촬영감독이 크리스토퍼 도일이다. 2046, 화양연화, 해피투게더 등의 왕가위 최근작들 엔딩크레딧에 계속 이름을 올렸던 인물....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찾아 보니 왕가위와 인연을 맺은 게 무려 아비정전 때부터다. 홍콩영화와 인연을 맺은 건 80년대 초반부터다. 중국문화에 대한 애정이 크다나. 어쨌거나 <파라노이드 파크> 역시 화면이 아름답다. 가슴이 쿵쿵 뛰는 장면들이 한둘이 아니다. 조용히 머릿속에 스며들어서 오래남는 이미지들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 십대를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내 안에 묻혀있었고, 어떻게 빠져나오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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