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츠카모토 신야 감독, 마츠다 류헤이 주연의 <악몽탐정>. 우리나라에서는 개봉을 하지 않았고, 부천인지 어디선가의 판타스틱영화제에서만 상영했다. 일본에서 반응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2편도 제작중이라고 한다.
대강의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앙상한 초자연스릴러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주인공 마쓰다 류헤이는 말 그대로 '악몽탐정'. 사람들의 꿈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을 짓누르는 과거라든가, 뭐 그런 것들을 해결해 주는 일종의 초능력자 또는 심령술사다. 그런데 '제로'라는 인물에게 전화를 건 사람들이 잔인한 방법으로 자살을 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그래서 또다른 주인공, 형사로 등장하는 히토미가 마쓰다 류헤이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래서 이 둘이 '제로'와 이래저래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물론 대부분 꿈 속에서.
그런데 직접 영화를 보면 일단은 굉장히 재미있다. 내 자신이 어둡고 피튀기는 영화를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그런 취향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참신한 소재를 긴박하게 잘 엮은 영화다. 후반부에서 조금 늘어지는 감도 있고, 첫 영화출연인 히토미의 불균질한 연기도 문제다. 또 결말은 관객이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이상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겁니까',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커다란 흠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제로'로 출연하는 감독 본인의 놀라운 연기력 덕에 조그만 흠집 따위는 눈에 안 들어올 정도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피를 튀길 것이냐'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감독이 감독이다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그 쫓아올 때의 소리가!!!!
참, 그리고 이 영화의 포인트가 또 있다. '미니스커트에 아찔한 하이힐을 신고 근무하는 여형사'라는 유치한 설정을 굉장히 뻔뻔스러우면서도 능숙하게 이용했다는 것. '자폐증적인 초능력자'라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살벌한 영화에서 만화적인 요소를 시침 뚝 떼고 사용했다는 게 정말 재미있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처음 본 지는 꽤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글을 끄적이는 건,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던 탓이다. 되씹다 보면 <악몽탐정>은 상당히 슬픈 영화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이 얼마나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어하는지 그려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해맑게만 보이던 히토미의 동료형사(안도 마사노부)는 자신이 얼마나 세상을, 그리고 스스로를 죽여버리고 싶어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히토미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냉철한 인물인지라 애써 머리로 부정하려고는 하지만, 그녀 안의 어두운 그림자는 '어서 스스로를 놓아버려'하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제로에 의해 끌려간 마음 속 밑바닥에서는, 이같은 사실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다. 제로가 '죽고싶지 않냐'며 추궁하는 말들은 너무나도 유혹적이다.
잠들어버리면 제로에게 난도질을 당하게 되는 상황에서, 히토미는 몰려오는 잠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여기서 히토미가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고 온몸을 쓰다듬으며 신음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사투를 벌이는 형사의 표정이 아니라 침대 위에서의 표정에 가깝다. 처음에는 이 장면을 보고 보고 누가 아이돌 출신 아니랄까봐 예쁘게만 보이려고 한다, 싶었는데 츠카모토 신야가 그렇게 놔둘 감독은 아니다. 게다가 굉장히 성적인 상징 같은 데 집착했던 전작들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죽음에 대한 욕망은 성욕만큼이나 본능적임을, 그리고 그만큼이나 지독하고도 강렬한 것임을 표현한 것 같다.
<악몽탐정>을 이렇게 읽는 데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국내개봉을 안 한지라 평론을 찾을 수도 없고. 영어권 영화 사이트에서나 한번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자기파괴에 대해서도 좀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이쯤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려 생각의 실마리를 잡아보자면, 후지타 쇼조는 이렇게 말했다.
"지적(知的 )모험을 회피하기 때문에 흔치 않은 복장이나 사치로 모험 욕구가 집중되는 것이다. ..... 폭력에의 열중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다. "사악한 파괴성은 성장에 실패함으로써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다."
지나치게 매끈해진 사람들. 그래서 권태로운 사람들. 권태 - 생존의 본능마저도 역행하게 할 만치 강력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최첨단의 세상이, 근본적으로 개개인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아니면 그 반대일까?
(그런데, 다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 영화는 슬픈 영화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악한 영화다. 깜빡 속을 뻔. 내용이야 어쨌거나 잔혹한 난도질 장면을 주요한 오락거리로 제공하는 영화니까. 감독은 분명히 이걸 즐기고 있다;; )
p.s - 영화 속에서 히토미의 아래와 같은 차림은 매우 훈훈했다. 일본여자스런 가느다란 목소리로 안 되는 노래를 부르기보다, 뻣뻣함을 무릅쓰고 춤을 추기보다, 아예 이런 컨셉으로 나가는 건 어떨지.

대강의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앙상한 초자연스릴러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주인공 마쓰다 류헤이는 말 그대로 '악몽탐정'. 사람들의 꿈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을 짓누르는 과거라든가, 뭐 그런 것들을 해결해 주는 일종의 초능력자 또는 심령술사다. 그런데 '제로'라는 인물에게 전화를 건 사람들이 잔인한 방법으로 자살을 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그래서 또다른 주인공, 형사로 등장하는 히토미가 마쓰다 류헤이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래서 이 둘이 '제로'와 이래저래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물론 대부분 꿈 속에서.
그런데 직접 영화를 보면 일단은 굉장히 재미있다. 내 자신이 어둡고 피튀기는 영화를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그런 취향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참신한 소재를 긴박하게 잘 엮은 영화다. 후반부에서 조금 늘어지는 감도 있고, 첫 영화출연인 히토미의 불균질한 연기도 문제다. 또 결말은 관객이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이상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겁니까',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커다란 흠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제로'로 출연하는 감독 본인의 놀라운 연기력 덕에 조그만 흠집 따위는 눈에 안 들어올 정도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피를 튀길 것이냐'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감독이 감독이다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그 쫓아올 때의 소리가!!!!
참, 그리고 이 영화의 포인트가 또 있다. '미니스커트에 아찔한 하이힐을 신고 근무하는 여형사'라는 유치한 설정을 굉장히 뻔뻔스러우면서도 능숙하게 이용했다는 것. '자폐증적인 초능력자'라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살벌한 영화에서 만화적인 요소를 시침 뚝 떼고 사용했다는 게 정말 재미있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처음 본 지는 꽤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글을 끄적이는 건,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던 탓이다. 되씹다 보면 <악몽탐정>은 상당히 슬픈 영화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이 얼마나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어하는지 그려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해맑게만 보이던 히토미의 동료형사(안도 마사노부)는 자신이 얼마나 세상을, 그리고 스스로를 죽여버리고 싶어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히토미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냉철한 인물인지라 애써 머리로 부정하려고는 하지만, 그녀 안의 어두운 그림자는 '어서 스스로를 놓아버려'하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제로에 의해 끌려간 마음 속 밑바닥에서는, 이같은 사실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다. 제로가 '죽고싶지 않냐'며 추궁하는 말들은 너무나도 유혹적이다.
잠들어버리면 제로에게 난도질을 당하게 되는 상황에서, 히토미는 몰려오는 잠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여기서 히토미가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고 온몸을 쓰다듬으며 신음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사투를 벌이는 형사의 표정이 아니라 침대 위에서의 표정에 가깝다. 처음에는 이 장면을 보고 보고 누가 아이돌 출신 아니랄까봐 예쁘게만 보이려고 한다, 싶었는데 츠카모토 신야가 그렇게 놔둘 감독은 아니다. 게다가 굉장히 성적인 상징 같은 데 집착했던 전작들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죽음에 대한 욕망은 성욕만큼이나 본능적임을, 그리고 그만큼이나 지독하고도 강렬한 것임을 표현한 것 같다.
<악몽탐정>을 이렇게 읽는 데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국내개봉을 안 한지라 평론을 찾을 수도 없고. 영어권 영화 사이트에서나 한번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자기파괴에 대해서도 좀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이쯤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려 생각의 실마리를 잡아보자면, 후지타 쇼조는 이렇게 말했다.
"지적(知的 )모험을 회피하기 때문에 흔치 않은 복장이나 사치로 모험 욕구가 집중되는 것이다. ..... 폭력에의 열중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다. "사악한 파괴성은 성장에 실패함으로써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다."
지나치게 매끈해진 사람들. 그래서 권태로운 사람들. 권태 - 생존의 본능마저도 역행하게 할 만치 강력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최첨단의 세상이, 근본적으로 개개인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아니면 그 반대일까?
(그런데, 다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 영화는 슬픈 영화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악한 영화다. 깜빡 속을 뻔. 내용이야 어쨌거나 잔혹한 난도질 장면을 주요한 오락거리로 제공하는 영화니까. 감독은 분명히 이걸 즐기고 있다;; )
p.s - 영화 속에서 히토미의 아래와 같은 차림은 매우 훈훈했다. 일본여자스런 가느다란 목소리로 안 되는 노래를 부르기보다, 뻣뻣함을 무릅쓰고 춤을 추기보다, 아예 이런 컨셉으로 나가는 건 어떨지.




덧글
dusgml2317 2009/05/02 14:00 # 삭제 답글
뭥미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