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 영화

나는 판타지를 지루해하는 편이다. 판타지 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대적 시공간을 제외한 다른 배경의 영화에는 대부분 끌리지가 않는다. 중세가 배경이라든가 등등.  그리고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도 싫다. 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선지, 당최 감정이입이 되질 않는다. 귀여운 동물이 나오는 영화가 낫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는 이같은 악조건(!)을 두루 갖춘 영화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이처럼 안 끌리는 영화를 본 이유는, 광고로 드러난 바와는 많이 다르다는 지인의 평 때문이다. 이미 이 감독의 '악마의 등뼈'를 본지라 그냥 지나칠 수 없기도 했다.

'판의 미로'는 한마디로 어두운 판타지다. FANTASY, 라 하면 사람들의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대신 구현해내는 무언가가 되어야 하건만 '판의 미로'는 정반대다. 주인공인 천진난만한 얼굴의 소녀는 공주가 되어 현실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 듯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판타지는 죽어가는 소녀의 환각 속에서만 존재한다.

판타지가 한갓 백일몽으로 전락하면서 현실의 잔인함은 관객에게 더더욱 쓰라린 충격을 안긴다. 스페인 내전 시기 군인들의 잔인함, 그리고 인간의 잔혹함. 영화는 어쩌면 판타지란 없음을, 그러니까 현실도피는 불가능함을 역설하면서 현실에 맞설 것을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군인들에 맞선 힘없는 게릴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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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oftdrink 2008/02/11 22:17 # 답글

    어찌보면 환타지가 맞지요. 각박한 현실을 피해 자신의 환상속에서 또 다른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가잖아요. 현실은 비극이었지만 오필리아는 그녀만의 세계에서 분명 행복해 했을겁니다. 공주가 되었으니까요.... ^^
  • 생강 2008/02/11 22:25 # 답글

    소프트님 / 그쵸?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근데 제가 워낙 비극적인 걸 좋아해서 비극적으로 보게 되네요. 좀 밝은 인간이 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 주드 2008/02/12 11:50 # 삭제 답글

    저 이 영화 보려고 두번 시도했는데 두번 다 실패했어요. 왠지 보려고 하면 할수록 두려워지는 영화랄까요.
    이 글을 보고 다시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생강 2008/02/14 00:57 # 답글

    주드님 / 전 너~무 제 취향이 아닐 것 같아서 계속 미뤄두다 겨우 봤더랬죠. 근데 조금만 보다 보면 빠져들어요. 꼭 보시고 좋은 글 올려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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