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죽음의 가벼움? 기자연습

말로만 듣던 국과수에 가서 시체부검 과정을 견학했다. 겉으로 보기에 국과수는 매우 허름해 보였지만, 내부는 대리석 바닥도 있고, 나름 고급스러워 보이는 강당도 있고, 의외로 럭셔리한 분위기였다. 이건 내가 남몰래 동경하던 그런 분위기가 아닌데, 싶었다. 그런데 바로 옆 동의 시신부검실로 이동하면서 "역시 이런 거!"하고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지하로 통하는 70년대틱한 계단과 복도. 그리고 포르말린에 담긴 장기로 채워진 책장.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부검실에 들어가서는 주머니에 손 집어넣지 말고, 잡담도 말고 엄숙하게 견학하라"는 교육담당자의 말을 들었다.

그날 그날의 부검 스케줄에 언론재단 교육생들의 견학을 끼워넣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부검실에 들어갔을 때는 벌써 시신의 배가 열려 있었다. 시신이 거무스레하고 빳빳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창백한 아기피부같은 느낌이었다. 50대 남자의 시신인데도 이상하게 깨끗한 느낌이다. 물론 어떻게 사망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겠지만.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시체들, 정말 잘 만든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에 나오는 시신들하고 비슷해 보였다. 한때 살아 움직였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마네킹 같은 몸이었다.

문제는 냄새. 다행히 겨울이라 덜했지만, 검시관이 움직일 때마다, 그리고 장기를 들출 때마다 역한 짐승같은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겼다. 전날 술을 마신 친구는 부검실을 나갔고, 목도리 등으로 코를 막은 친구도 여럿 있었다. 이 냄새는 부검 견학이 끝나고 강의를 들은 후 국과수를 떠나기 전까지 코끝을 맴돌았다.

인상깊었던 건 두개골과 얼굴 가죽. 두피를 가르고, 두개골을 여는 과정에서 얼굴 가죽은 목까지 밀려내려간다. 우리가 서로를 구분하고 평가하고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얼굴 가죽은 말 그대로 한 장의 가죽에 불과했다. 얇고 헐렁헐렁한. 그렇게 목 위의 가죽을 밀쳐놓고 두개골을 자르는데, 검시관들은 톱을 쓴다. 전기톱을 쓰면 가루가 날리기 때문이란다. 득득득 소리를 내며 두개골이 잘려나가고,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들어있을 것만 같았던 뇌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내졌다. 검시관들이 뇌 무게를 재고 출혈여부를 살피고 두개골 내부에 금 간 부분은 없나 살핀 후 다시 뇌를 집어넣고 아까 잘라낸 두개골을 끼워맞췄다. 플라스틱 블록을 끼워맞추는 듯한 소리가 났다.

겨우 한 번 부검실에 들렀다고 해서 커다란 깨달음을 얻지는 않았다. 상상했던 것처럼 이게 시체다 하고 실감이 나지도 않았고, 그 자리에서는 일단 신기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날 내내,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끔 부검실 풍경을 떠올리면서 조금은 반성을 했다. 죽음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태함에 대해서. 물론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떠올리지 않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나태'라고 표현하는 건 지나칠지도 모르겠지만, 좀 더 내 삶에 진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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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수첩 : 전쟁보다도 더 없어졌으면 하는 것 2008-12-18 15:44:25 #

    ... 서 몇 대 때려주고 싶다. 피해자는 그래도 자신이 겪은 일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얼마나 하늘이 노래졌을까.  올 초 언론재단서 국과수 견학을 갔을 때, 시신부검(전에 쓴 국과수 견학기)이 끝나고 이런저런 슬라이드를 많이 봤다. 이런 도구로 살해에서 이런 상처가 있는 시신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슬라이드였는데, 그중에는 강간당한 후 아마 목졸려 살 ... more

덧글

  • softdrink 2008/02/23 08:28 # 답글

    그렇죠... 인간의 얼굴은 단지 한 장의 껍데기에 불과하죠. 그 껍데기 한장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속이고... 참 쓸데 없는 짓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근데 왜 많은 전문가가 사회를 해부해도 껍데기가 벗겨지지 않는 걸까요?
  • 이승환 2008/02/23 19:56 # 삭제 답글

    재미있어 할 거라 생각했는데...
  • 생강 2008/02/24 01:29 # 답글

    소프트님 / 그러게요. 며칠 동안 화장하면서 저도 많이 고민했어요ㅎㅎㅎ

    누렁이 / 사실 재밌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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