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 두근두근

(스포일러 있음)

미도리님의 추천글을 보고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을 읽었다. 숫자가 들어가서 그런지;;;십각관의 살인이라든가 영화 13층이라든가 등등이 생각나서 은연중에 비슷한 퀄리티정도만 예상했었으나 정반대로 흥미진진하게 봤다. 둔한 건지 정말 기대가 없었던 건지, 제목과 표지에 뻔히 나와 있는데도 사형 이야기가 나올 줄은 전혀 생각도 않고 읽기 시작. 



그런데 읽다보니, 이 아저씨 참 취재 많이 했구나 싶다. 교도관과 전과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교도관과 수감자의 생활이 (물론 얼마나 현실에 가까운지는 모르겠지만) 생생하게 그려진다. 사형집행까지의 13개 절차(제목이 그래서 '13계단'이다)와 사형장의 광경,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의 고통,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의 심정 등등이 묘사된다. 

특히 사형집행에 두 번 참가한 교도관 난고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교도관 세 명이 각자 버튼을 누르면 죄수가 사형대에서 추락하는 식으로 사형이 집행된다. 누구의 버튼이 진짜 버튼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고는 한 사람이 목졸려 죽으면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게 되고, 죽은 이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물어뜯은 혀끝이 나뒹구는 장면도 보게 된다. 난고는 이런 기억을 아무리 아내와라도 공유할 수가 없다. 

난고는 유아들을 강간하고 머리를 바위로 짓부숴 죽인 범죄자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도대체 누구에게 이들을 살해할 권한이 있는지는 결론을 내지 못한다. 아무리 법의 이름을 등에 업었다한들 말이다.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서 결국 자신에게 덤벼든 살인범을 살해하고야 만다. 교도관으로서의 공적인 사형집행과 개인으로서의 사적인 살인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작가는 이런 소재들을 그저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로 나열하지 않는다. 단순히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 하나만 데려다놓고 진부하게 사형 반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작가는 사형제도가 최고의 대안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분명히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악의 화신처럼 보이는 흉악범들도 있다. 하지만 억울하게 사형당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아무리 직접 목졸라 죽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는 교도관 등 관련자들의 고통은 누가 감당해줄 것인지를 묻는다. 

어쨌든 결론은 꽤 무게감 있으면서도 긴박감 넘치고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거. 


덧글

  • 미니벨 2008/12/18 16:20 #

    이 소설이 재미 있어서 그 뒤에 나온 다카노 가즈아키 소설을 다 읽었네요.
    그래도 13계단이 가장 재밌더군요.
  • 생강 2008/12/19 08:53 #

    역시 수입되는 소설들은 처음에 나오는 것들이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미도리™ 2008/12/18 18:49 #

    다카노 가즈아키 정말 대단한 작가지요! ^^
    그레이브 디거도 좋은 작품이니 꼭 읽어보세요!!
  • 생강 2008/12/19 08:56 #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군더더기나 쓸데없는 감상 없이 딱딱 진행되는 게 좋더라구요. 그레이브 디거도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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