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카인드 리와인드 영화



정말 놓치기가 싫어서 광화문 씨네큐브로 달려가서 봤다. 휴먼네이처는 보다 만 것 같으니까 제쳐두고, 미셸 공드리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 이후 두 번째. 생각난 김에 이터널 선샤인이나 다시 봐야겠다. 

슬럼가의 시대에 뒤떨어진 비디오가게 점원들이 사고로 비디오테이프가 전부 못쓰게 되자 직접 발로 영화를 만드는데, 이게 마구 인기를 얻는다는 내용. 잭 블랙이 모스 데프와 함께 고스트버스터즈, 로보캅, 러시아워2 등을 찍으면서 엉성한 특수효과(!!)로 웃겨준다. 잭 블랙은 역시나 안하무인의 건방진 찌질이 캐릭터로 등장, 또 비슷한 이미지라서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훌륭하게 웃음을 줬다. 특히 감전된 직후의 또라이 연기는 정말 최강!!

영화 중후반부에는 저작권 문제나 슬럼가 재건축 등의 문제가 끼어든다. 그러면서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는 본래의 예술이라든가 따뜻한 소규모 공동체에 대한 향수.....라고 정의할만한 주제의식이 부각된다. 누군가는 너무 작위적인 것 아니냐고도 했고, 나도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다.  개인적으로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오글오글 모여있는 것부터를 싫어하다보니 낯선 사람들까지 다 모여서 한마음으로 박수를 치는 마지막 장면은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람들(예를 들어 시네마 천국 같은 영화를 사랑한다거나)은 또 되게 좋아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영화를 보면서 '약자의 감성'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건 강자보다 약자(사회적 지위를 기준으로)에 더 공감하게 되는 심리라는 뜻으로 내 마음대로 쓰는 말이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잡아먹히는 초식동물보다 잡아먹는 사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안 탓인지, 요즘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다. 

비카인드 리와인드엔 이런 약자의 감성이 진하게 담겼는데, 보통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능력만 갖춘 사람들이 소소한 성과를 이뤄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난 이런 영화들이 좋으면서도 가끔씩 싫을 때도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내 자신의 패배주의와 무기력을 합리화하는 건 아닌가 하고 의심이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의심을 하다가도 어쨌거나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사람 좋은 황희정승마냥 결론을 내리기는 하지만. 

(사회적 약자가 인간성 같은 면에서는 강한 사람일 수도 있고, 자신의 사회적 신분은 낮으면서 강자에게 감정이입이 더 잘 되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있겠다. 또 감정이입의 대상이 어떤 캐릭터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는 거고. 하지만 이런 건 편의상 제외.)

생각난 김에 끄적이자면, 약자에게 주로 공감하는 사람들은 어느 심리학 책에서 주워들은 '양형 인간'과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모여 뭔가 말하는 사진을 보여줬을 때, 늑대형 인간들은 "사람들이 격렬히 토론하고 있다"고 묘사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양형 인간들은 "사람들이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이 잘 풀려나가는 경우, 늑대형 인간들은 기운이 솟고 즐거워하는 반면 양형 인간들은 '이게 실패하면 어쩌나' 싶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물론 사람들을 딱부러지게 늑대형, 양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나저나 언뜻 예고편만 봐도 잭 블랙이 나오는 꽤 재밌는 코미디 영화인데 왜 소수 극장에서만 개봉하는지 참 모르겠다. 



덧글

  • *** 2009/01/15 14:46 # 삭제

    참신한 발상, 뻔한 전개라고 하면 대략 맞을 거 같음
    이터널선샤인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일반적으로 남자는 늑대형인간, 여자는 양형인간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런 의견
  • Gilipolla 2009/01/29 16:16 #

    전 재즈콘서트를 한편 본거같은 느낌이라 너무 좋았습니다. 직접 만드는 영화 하나하나가 마치 즉흥연주를 듣는 느낌이 들어서요 ㅎㅎ
  • 생강 2009/01/31 19:21 #

    순박한 콘서트랄까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이 늦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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