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나라 공포영화를 보기 싫어하는 이유는 감정의 과잉 때문이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눈물이 너무 넘쳐나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주인공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장면으로 때워버리는 게 마음에 안 들었었다.
반면 불신지옥은 깔끔하기 그지없다. 인물들부터가 그렇다. 여주인공은 질질 짤 힘도 없이 생활고에 지쳐 있다. 형사는 순수하게 '일'의 각도에서 여주인공의 사건을 다루며 짜증스러워한다. 어떤 사건이라도 열정을 다하는 비현실적인 열혈형사가 아니라서 리얼하다. 사건의 중심이 되는 여주인공의 동생은 정신 장애를 겪고 있어 말 자체가 적다.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들이 가장 시끄러운 축이긴 하지만 다른 영화에서처럼 너죽고 나죽자는 식의 패악을 부리지는 않는다. 가해자 중 한 명인 장영남의 연기가 조금 튀는 느낌이긴 했지만 이 분이 복도쪽 창문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며 속삭이는 장면은 꽤 무서웠다.
그리고 불신지옥이 좋았던 건 한국 영화라서다.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아파트문화, 기독교광신문화, 민간신앙 등을 소재로 활용해 현실적인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복도식 아파트에서 복도쪽으로 난 창문을 보고 누구나 느꼈을 법한 공포, 우리나라의 사이비 기독교 신자들이 풍기는 불안감을 녹여내 몰입도를 높인다. 서양 공포영화에서는 아무리 무서운 악마가 떼로 출몰한들 결국은 남의 세계관에 근거한 이야기인지라 우리의 이야기만큼 공감은 되지 않는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여주인공의 동생이 장영남을 보고 으르렁대던 장면. 조작을 한 건지, 순전히 연기만으로 그런 표정이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별 거 아닌 듯하면서도 소름끼쳤다.
태그 : 불신지옥



덧글
** 2009/09/02 16:16 # 삭제 답글
무플방지 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흥미있는 콘텐츠로 네티즌들의 관심을 유발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생강 2009/09/02 16:19 #
완전 악플 중의 악플이로군...........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