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어 영화

일요일 출근, 마감은 끝났고 할일은 없어서 쓴김에 몰아쓰기. 마음에 여유가 생겼으니까 블로그라도 자주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역시 확언은 못한다. 어쨌거나 스포는 없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동네에서 뛰어놀다가 본 풍경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살던 동네는 3~5층짜리 빌라들이 줄지어 있는 전형적인 서울의 위성도시였다. 지금 생각하면 슈퍼나 정육점이나 세탁소 등등이 다 가까이 있고 물가도 잘은 모르지만 쌀 것 같은 느낌인데 길도 집도 좁아서 다시 살고 싶지는 않은...;어쨌든 어느 가을 한낮에 집에서 좀 떨어진 곳의 빌라와 빌라 사이 틈을 발견했다. 문짝 하나가 달린 좁지는 않은 틈이었는데, 창살 같은 철제 문짝 너머, 건너편을 바라보다 보니 건너편에 비치는 햇빛은 내가 있는 곳의 햇빛과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좀 더 아련하고 오래돼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멀지는 않지만 자주 가던 곳도 아니고 그렇게 그 틈을 바라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낯선 기분도 들었고. 왠지 저 너머는 다른 세계가 있을 것 같다, 최소한 시간대나 공간 중 한 가지는 지금 이 곳과 다른...이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는 쌩뚱맞게 저긴 북한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저 너머로 가볼까 말까 고민까지도 한 것 같은데 기억으로는 안 가본 것 같다. 무슨 이유인지는모르겠지만. (물론 진짜 저길 넘어가면 다른 세계가 있을 거라고 믿지도 않았다.)

그 틈이, '더 도어'에 등장해 스토리 전개의 기반이 된다. 출발 비디오여행에서 대부분의 스토리를 알게 됐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본 이유는 초등학교 때 기억. 영화에서는 빌라 사이 틈이 아니라 어떤 동굴인데, 그 동굴을 넘어가면 5년 전 자신이 살던 현실이 펼쳐진다는 설정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도 궁금했고. 

초반의 사건들이 터진 후 중반부는 상당히 밋밋하다.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긴 하지만서도 초반 사건들이 워낙 임팩트있다보니 더더욱. 그래서 도대체 이걸 어떻게 결말을 낼까 궁금할 즈음에 워 워 설마 이러기야?  싶은 클라이맥스가 온다. 조금만 삐끗하면 호기심 이끌어내는 설정이라는 메리트와 중반부에 쌓은 노력을 다 날려버릴 수 있는 클라이맥스다. 다행히 감독은 왜 그런 동굴이 생겼고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구질구질한 설명에 집착하는 대신 영화 초반부터 그랬듯 주인공의 심리에 맞춘 초점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영화를 끝낸다. 좀 위태위태한 부분이 있지만서도 난감한 설정으로 시작해서 이렇게 끝냈다는 게 대단. 

낙엽 잔뜩 쌓인 수영장과 우울한 목조 계단, 생기 없는 주인공의 얼굴, 주인공 아내의 미모 등 눈도 나름 즐거운 영화다. 물론 그 정도로 만들었으니까 독일 영화가 한국에서까지 개봉하는 거겠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