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시승기 - Jeep 뉴 그랜드 체로키와 평창 잡담


아무래도 차가 있으면 멀리 드라이브를 가게 되는 건 좋긴 한데, 대신 운동을 덜 하게 되는 건 단점. 주말에 두세시간씩 북한산이나 북악산 하늘길에 다녀오면 그렇게 개운한데, 차 밀리는 시간대를 피해서 드라이브를 다녀오면 하루가 날아간다.

이번에 타본 차는 지프에서 한달여 전쯤 출시된 뉴 그랜드 체로키. 이전까지 폭스바겐의 파사트나 인피니티 G25 스마트, 렉서스 ES300h 등이 '인상적인' 차였다면..이 차는 그냥..사고 싶다ㅠㅠㅠㅠㅠㅠ


차를 실물로 보기 전까진 "지프는 각져야 제맛 아님?"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 뉴 그랜드 체로키의 출시행사에서 먼발치서 잠깐 보고는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주차장에 세워진 차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드는 생각은, '아아 개이뻐...'....색상은 줄여서 체리 레드, 풀네임은 딥 체리 레드 펄 코트..어쨌거나 펄 코트의 반짝이는 느낌이 개이쁜 느낌이 더해지긴 했다.


내가 좋아하는 각은 없지만 그 덩치에서 느껴지는 든든함과 터프함, 그러면서도 도시형 SUV다운 뭐 그런 느낌이 살아계시는 차님이다. 자연스럽게 존대말이 나오게 하는 카리스마의 차님...

이렇게 큰 차를 몰아본 적은 없어서 처음엔 조심스러웠는데, 금세 익숙해진다. 디젤 소음이 좀 거슬리지만 뭐 요런 차가 너무 조용해도 이상하지 싶은 너그러움이. 그리고 '한국형 내비'라고 하는 순정 내비는 이 차의 최대 오점이니까 그냥 폰으로 내비 앱을 켜고 달리는 편이 낫다. 주소검색만 되고 명칭 검색이 안되는 데다 음성안내는 마치 십년 전에 만든 듯한 어색함이 뙇! 이 상태로 좋다고 출시한 책임자는 짤려야 마땅하다.

역삼 파이낸스센터에서 차를 인수받아 경기도로 달려가 가족들을 태우고(아버지 차가 허접해 보이는 아픔을 딛고;) 간 곳은 알펜시아 인터컨. 두달여 전에 일로 갔다가 마음에 들어서 가족들과 다시 오게 됐다.

숙소는...아직 본격적인 성수기 전이라 한국인보단 중국인, 동남아인들이 좀 더 많은 듯했고...난 스키를 안 탔지만 아버지와 동생 말로는 슬로프가 그닥이라고 함. 호텔 안 사우나는 작지만 괜찮은편. 수영장만 있었음 더 좋았을 것을...조식은 그냥저냥.

알펜시아에서 설렁설렁 놀다 오대산국립공원의 월정사로. 그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눈길을 달렸는데, 4WD의 그 안정감이...물론 차는 매우 더러워졌다. 눈까지 내리는 바람에 더더욱.

뉴 그랜드 체로키에는 스포츠, 노멀모드뿐만 아니라 오프로드 전용 주행모드 전환 기능이 있다. 셀렉터레인이라고 눈길-진흙길-자갈길-모래밭-오토 등 다섯가지 모드인데, 거기에 차체 지상고도 대략 9센티, 10센티 가량 조절 가능. 버튼을 눌러 조절하면 차체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느낌이 살짝 나서 신기하다. 셀렉터레인도 이리저리 바꿔봤는데 눈길에서 스노 모드로 바꿨더니 전보다 차 안에서 느껴지는 흔들림이 더 심해지는 느낌인데 요게 뭔지는 잘 모르겠..내일 물어봐야 할 듯하다.

어쨌든 힘은 좋고, 한 십미터 정도는 추락해도 끄떡 없을 것 같은 든든함이...사고 싶을뿐. 나중에 중고라도 사 보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을 잠시 진지하게 해 봤다. 사실 원래 취향은 각진 세단임에도 불구, 그랜드 체로키 같은 차는 끌려버린다. 하지만 이 차는 칠천만원대. 중고도 상태 좋은 건 비싸겠지...난 안 될거야 아마...

이런 생각 때문인지 왠지 더 추워서 월정사 옆 전나무숲길은 잠시 걷다 말았지만, 봄 되면 꼭 다시 와 봐야겠다 싶었다.


평소에 다소 점잖은 편인 우리 가족은 주차장으로 가는 빙판길 위에서 급 나사가 풀려 동심 폭발. 빙판 위에서 이해 못할 포즈로 사진을 찍는가 하면


눈쌓인 둔덕을 넘으며 자유를 향한 대탈주 by 알카트라즈 수감자 st.를 연출하는 아버지...

사실 지금도 조기축구에서 전후반 지치지 않고 계속 뛰고 스키는 최상급 코스를 고집하는 분인데...연출을 위한 지못미..

이렇게 잘 놀고 다시 한시간 여를 달려 평창전통시장(지금은 평창올림픽시장이 정식 명칭인듯..왜 꼭...). 다른 목적은 없고 그냥 시장에서 메밀전병과 올챙이국수와 수수부꾸미를 먹고 싶어서 갔는데, 장날도 아니고 날씨도 궃어서인지 시장 안은 매우 썰렁. 아버지가 찍은 집으로 들어갔는데..알고 보니 올챙이국수는 여름에 시원하게 먹는 국수라고 해서 대신 메밀 칼국수 주문.



음식 사진은 언제나 먹다 찍어야 제맛.

그런데. 메밀전병하고 메밀전하고 수수부꾸미가...느무 맛있다. 수수부꾸미는 서울서 먹던 단 맛이 거의 없어서 좋음. 어른의 맛...

글구 메밀칼국수는 그냥 칼국수에 면이 메밀면인 식인데, 요건 좀..면이 약간..대기근이 닥치면 이런 걸 먹어야겠군, 싶은 맛. 나름의 담백함을 좋아할 사람들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육수는 좀 조미료맛이 강함. 주인할머니는 이 시장에서 가장 오래 메밀음식점을 하셨다고 함. 무려 39년...담에 평창 다시 가면 꼭 이 집으로 다시 가겠다고 다짐해봤다.


어쨌든 잘 먹고 다시 서울로. 어두워진 강원도의 도로는 딱 내 취향. 어둡고 고요하고..여기서 갑자기 똻! 생각나서 들은 음악은 Rage의 Lingua Mortis 앨범. 아마 죽음의 언어라는 뜻의 라틴어로 추정. 메탈+오케스트라 협연 앨범으로, 사실 레이지의 음악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오케스트라 덕분에 매력있는 앨범. 고등학교 때 듣다가 지금껏 잊고 살았는데 이날 풍경에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근데 뉴 그랜드 체로키를 몰아보고 싶어하는 동생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노래 듣다 자버렸다.



그렇게 평창에 잘 다녀왔습니다 끝.

이라고 하려다가 이튿날엔 홍대의 비스위트온에 갔는데, 참고로 이 집의 디저트류가 맛있대서 가보겠다고 기억해둔 게 한 7년 전. 이제야 와서 대표 메뉴인 타르트 타탄을 시켰는데...

원래 커스터드 크림을 좋아하지만 요 밀피유+타르트스런 메뉴에 들어간 커스터드 크림은 이전까지 먹은 커스터드 크림들의 뺨을 후려갈기는 느낌이었다. 같이 간 친구와는 전에 페이야드의 밀피유를 같이 먹은 적이 있는데, 페이야드는 비교도 안 된다고 단언. 물론 신세계 본점의 페이야드는 비스위트온보다 훨씬 분위기가 좋단 장점이 있긴 하다. 가을에 야외석 앉아서 책 한권 읽어주면...허세 쩐다.

어쨌든 이만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