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탓에, 며칠 동안 문득문득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면서 좀더 영화를 알고픈 욕심이 커졌다.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1. 톰 스톨(혹은 조이)은 어떤 사람이며, 왜 과거를 지운 채 살아가고 있었을까?
-> 듀나의 영화평에는, 조이가 왜 톰 스톨로 변신했느냐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었다. '조이는 살인마지만 동시에 철저히 자신의 폭력성을 통제할 줄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살다간 죽도 밥도 안 된 다는 사실을 깨닫고 변신한 것이다'. 참 설득력 있는 추측이기는 하지만, 조이의 변신 이유에 대한 추측은 이 영화를 분석하는 데 있어 사실 별 도움은 안 되는 듯하다. 이후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별달리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차피 그 추측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
더 좋은 질문은 지금의 톰이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이다. 먼저 톰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살인의 추억을 별로 수치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과거에 대해 당당하지도 않다. 병원에 누운 톰은 아내의 추궁에 과거를 떳떳히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조이 있다'는 식으로 조금 비굴하게 군다. 그저 아내에게 거짓말을 해서 미안하고,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고 싶을뿐이다. 결국 톰은 과거의 폭력이 왜 잘못되었는지 아직도 모르는, 여전히 냉혈한같은 인물이다.
2. 비정한 살인마와 푸근한 아빠의 인격이 어떻게 공존하는 걸까?
-> 이 질문도 사실 영화 분석에 대한 기여도를 따지자면 별 영양가 없는 질문일 수 있다. 특히 조이와 톰 같은 두 인격이 같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내 생각에도 짐승같은 살인마가 진심으로 아내든, 자식이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런데 현실을 떠나 영화 안에서만 보자면, 감독은 두 인격의 공존을 통해 인간의 일상에 짙게 배어있는 폭력성을 나타낸 게 아닌가 싶다. 폭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알고보면 폭력에 익숙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tv 쇼프로에서 뚱뚱하다고 놀림받는 개그맨을 보고 웃거나, 사나운 말로 친구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도 폭력이다. 물론 감독이 '그러니까 우리 착하게 살아요~'라고 결론짓기 위해 이런 주인공을 내세우지는 않았을 테지만.
3. 이디 스톨은 왜 '조이'와 섹스를 했고, 왜 그 직후에 싸늘하게 돌변하는 걸까?
-> 계단에서의 정사씬을 두고 film2.0 기자는 '이디와 조이는 폭력을 둘러싼 적대적 공모관계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옳은 말 같다. 그 뒷 문장들이 모호해서 내가 생각하는 '적대적 공모관계'와 정확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식으로 풀어 써보면 이렇다.
자상한 남편 톰과 살아오면서 폭력이란 걸 까맣게 모르고 지냈던 이디는 '조이'와 맞부딪치면서 폭력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부드러움과 합리성과 대화가 아닌, 타인을 움직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서의 폭력 말이다. 그걸 표현한 게 계단에서의 정사씬이다. 앞서의 정사씬과는 다른, 지극히 짐승적인 모습. 이후의 싸늘한 돌변은 이디가 실제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주먹질같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남편에 대한 정신적인 폭력이다. 이디는 이제 남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폭력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디가 이렇게 된 이유는 톰 또는 조이의 폭력 탓이다. 톰도 그걸 알기에 섹스 전처럼 거칠게 이디를 붙잡지 못한다. 그래서 적대적 공모관계다.
4. 아들의 폭력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 일단은 제목처럼 폭력의 역사가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이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들에게는 '조이'와 같은 과거가 없다. 아직 폭력을 모르던 상태에서 자신을, 또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순식간에 폭력을 알아버린 것 뿐이다.
그래서 아들의 반응은 폭력에 대한, 그리고 폭력에 능한 아버지를 향한 혐오로 나타난다. 영화의 뉘앙스와 아들 역 배우의 순진한 얼굴로 보건대(?) 아들이 앞으로 폭력에 맛을 들일 것 같진 않다.
5. 형 리치의 저택에서 벌어진 난투극이 의미하는 것은? 난투극 후 연못가에서 톰 스톨은 무엇을 느낀 걸까?
-> 그냥 영화 줄거리상 필요한 복수씬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형 리치가 등장하는 장면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화면의 질감, 색감이 이전까지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뭐가 다른 건지, 다른 게 맞긴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또 분위기가 꿈 꾸는 듯, 몽환적인 듯한 게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거기서 또다시 살인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이건 정말 모르겠다.
톰이 저택을 빠져나와 연못가에서 짓는 표정은 내가 보기에 후회나 속죄 같지 않다. 그보다는 단순한 육체적, 정신적 피곤에 가까운 듯하다. 조이가 톰으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조이는 살아있음을, 그렇기에 미래의 어느 날에라도 다시 조이가 등장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게 아닐지.
6. 마지막 장면의 의미는?
-> 사람 잡느라 외박하고 돌아온 가장이 비척비척 식탁으로 걸어간다. 누구 때문에 고생이 말이 아닌 아내와 아들은 일단 그를 무시한다. 그러다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딸이 아빠의 자리에도 접시와 포크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망설이던 아들도 빵접시를 아빠 앞에 가져다준다. 아내는 눈물이 얼룩진 얼굴을 들어 남편을 말없이 쳐다보고, 남편도 똑같은 얼굴로 아내를 마주본다. 그리고 끝.
이 결말을 보고 딱 오는 느낌은 '허무하면서도 감동적'이라는 거다. 허무한 이유는 아무래도 감독이 명확한 결론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동시에 감동적인 이유도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관객에게 결론을 내맡겼기 때문에, 그러니까 톰 가족은 이제 폭력가족이 될 수도 있고 평화가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폭력의 역사를 거쳐온 가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폭력성을 드러내놓고 살라는 법은 없다. 조이가 20년 가까이 톰으로 살아오면서 완벽하게 폭력성을 지웠듯, 폭력은 결국 사용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그런데 이같은 모범답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누군가는 폭력을 모르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감독은 이 부분을 짚어내기 위해 결말을 저렇게 처리하지 않았을까.
대강 끼워맞춰본다고 적어내리긴 했지만, 아주 부족한 듯싶다. 해외 평론가들의 평을 찾아봐야 하려나.
1. 톰 스톨(혹은 조이)은 어떤 사람이며, 왜 과거를 지운 채 살아가고 있었을까?
-> 듀나의 영화평에는, 조이가 왜 톰 스톨로 변신했느냐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었다. '조이는 살인마지만 동시에 철저히 자신의 폭력성을 통제할 줄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살다간 죽도 밥도 안 된 다는 사실을 깨닫고 변신한 것이다'. 참 설득력 있는 추측이기는 하지만, 조이의 변신 이유에 대한 추측은 이 영화를 분석하는 데 있어 사실 별 도움은 안 되는 듯하다. 이후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별달리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차피 그 추측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
더 좋은 질문은 지금의 톰이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이다. 먼저 톰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살인의 추억을 별로 수치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과거에 대해 당당하지도 않다. 병원에 누운 톰은 아내의 추궁에 과거를 떳떳히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조이 있다'는 식으로 조금 비굴하게 군다. 그저 아내에게 거짓말을 해서 미안하고,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고 싶을뿐이다. 결국 톰은 과거의 폭력이 왜 잘못되었는지 아직도 모르는, 여전히 냉혈한같은 인물이다.
2. 비정한 살인마와 푸근한 아빠의 인격이 어떻게 공존하는 걸까?
-> 이 질문도 사실 영화 분석에 대한 기여도를 따지자면 별 영양가 없는 질문일 수 있다. 특히 조이와 톰 같은 두 인격이 같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내 생각에도 짐승같은 살인마가 진심으로 아내든, 자식이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런데 현실을 떠나 영화 안에서만 보자면, 감독은 두 인격의 공존을 통해 인간의 일상에 짙게 배어있는 폭력성을 나타낸 게 아닌가 싶다. 폭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알고보면 폭력에 익숙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tv 쇼프로에서 뚱뚱하다고 놀림받는 개그맨을 보고 웃거나, 사나운 말로 친구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도 폭력이다. 물론 감독이 '그러니까 우리 착하게 살아요~'라고 결론짓기 위해 이런 주인공을 내세우지는 않았을 테지만.
3. 이디 스톨은 왜 '조이'와 섹스를 했고, 왜 그 직후에 싸늘하게 돌변하는 걸까?
-> 계단에서의 정사씬을 두고 film2.0 기자는 '이디와 조이는 폭력을 둘러싼 적대적 공모관계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옳은 말 같다. 그 뒷 문장들이 모호해서 내가 생각하는 '적대적 공모관계'와 정확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식으로 풀어 써보면 이렇다.
자상한 남편 톰과 살아오면서 폭력이란 걸 까맣게 모르고 지냈던 이디는 '조이'와 맞부딪치면서 폭력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부드러움과 합리성과 대화가 아닌, 타인을 움직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서의 폭력 말이다. 그걸 표현한 게 계단에서의 정사씬이다. 앞서의 정사씬과는 다른, 지극히 짐승적인 모습. 이후의 싸늘한 돌변은 이디가 실제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주먹질같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남편에 대한 정신적인 폭력이다. 이디는 이제 남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폭력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디가 이렇게 된 이유는 톰 또는 조이의 폭력 탓이다. 톰도 그걸 알기에 섹스 전처럼 거칠게 이디를 붙잡지 못한다. 그래서 적대적 공모관계다.
4. 아들의 폭력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 일단은 제목처럼 폭력의 역사가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이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들에게는 '조이'와 같은 과거가 없다. 아직 폭력을 모르던 상태에서 자신을, 또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순식간에 폭력을 알아버린 것 뿐이다.
그래서 아들의 반응은 폭력에 대한, 그리고 폭력에 능한 아버지를 향한 혐오로 나타난다. 영화의 뉘앙스와 아들 역 배우의 순진한 얼굴로 보건대(?) 아들이 앞으로 폭력에 맛을 들일 것 같진 않다.
5. 형 리치의 저택에서 벌어진 난투극이 의미하는 것은? 난투극 후 연못가에서 톰 스톨은 무엇을 느낀 걸까?
-> 그냥 영화 줄거리상 필요한 복수씬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형 리치가 등장하는 장면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화면의 질감, 색감이 이전까지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뭐가 다른 건지, 다른 게 맞긴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또 분위기가 꿈 꾸는 듯, 몽환적인 듯한 게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거기서 또다시 살인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이건 정말 모르겠다.
톰이 저택을 빠져나와 연못가에서 짓는 표정은 내가 보기에 후회나 속죄 같지 않다. 그보다는 단순한 육체적, 정신적 피곤에 가까운 듯하다. 조이가 톰으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조이는 살아있음을, 그렇기에 미래의 어느 날에라도 다시 조이가 등장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게 아닐지.
6. 마지막 장면의 의미는?
-> 사람 잡느라 외박하고 돌아온 가장이 비척비척 식탁으로 걸어간다. 누구 때문에 고생이 말이 아닌 아내와 아들은 일단 그를 무시한다. 그러다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딸이 아빠의 자리에도 접시와 포크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망설이던 아들도 빵접시를 아빠 앞에 가져다준다. 아내는 눈물이 얼룩진 얼굴을 들어 남편을 말없이 쳐다보고, 남편도 똑같은 얼굴로 아내를 마주본다. 그리고 끝.
이 결말을 보고 딱 오는 느낌은 '허무하면서도 감동적'이라는 거다. 허무한 이유는 아무래도 감독이 명확한 결론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동시에 감동적인 이유도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관객에게 결론을 내맡겼기 때문에, 그러니까 톰 가족은 이제 폭력가족이 될 수도 있고 평화가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폭력의 역사를 거쳐온 가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폭력성을 드러내놓고 살라는 법은 없다. 조이가 20년 가까이 톰으로 살아오면서 완벽하게 폭력성을 지웠듯, 폭력은 결국 사용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그런데 이같은 모범답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누군가는 폭력을 모르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감독은 이 부분을 짚어내기 위해 결말을 저렇게 처리하지 않았을까.
대강 끼워맞춰본다고 적어내리긴 했지만, 아주 부족한 듯싶다. 해외 평론가들의 평을 찾아봐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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