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케 다카시, 오디션 영화



친구가 '오디션'이 재미있다고 보라고 했을 때, 천계영의 만화 '오디션'인줄 알았다. 그런데 일본감독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였다. 미이케 다카시 영화는 착신아리와 단편 하나(박찬욱, 미이케 다카시, 천궈의 '쓰리')밖에 본 적이 없지만, 이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찾아 본 후에야 안 일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아마 꽤 흐뭇하게 봤던 '강령(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감독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먼저 남자주연배우인 이시바시 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듯 했으나 '자살클럽'에서 인상에 남았던 탓이지, 사실 많이 본 얼굴은 아니다. 자살클럽도 그렇고 오디션도 그렇고...좀 우울한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분이신 것 같다. 내 구분법에 의하면 이분의 얼굴은 '켕기는 인상'에 속한다. 뭔가, 무슨 표정을 짓더라도 떳떳해 보이지 않는 얼굴.

그리고 여자주연배우인 xxx. 귀찮아서 이름도 안 찾아봤다. 영화 줄거리상으로는 분명히 미야자와 리에처럼 예쁜 얼굴이어야 하건만, 예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배우다. 사실 처음 보고 중국인같이 생겼다는 생각이! 매력적인 남배우건 여배우건 하나 등장하면 영화 보기가 훨씬 더 즐거워지는데, 그런 면에서 좀 아쉬웠다.

홀아비인 주인공이 아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재혼을 결심한다. 그런데 평범한 방법으로 재혼 상대를 구하는 게 아니라 '오디션'을 봐서 고르기로 한다....라고 이야기하면 아주 미친 인간처럼 들리겠지만, 별로 그렇지는 않다. 영화 제작사 간부로 있는 친구가 어느 영화의 여주인공을 구하는 김에, 그 오디션에서 떨어진 인물들을 대상으로 탐색해 본다는 계획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고른 여자가 아사미. 좀 느끼하고 부담스러운 데이트 장면이 이어진다.
(문제는 이만큼 스토리가 전개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거의 영화의 반 이상. 왜 그랬을까?)

그런데 여기서부터 공포영화스러운 장면이 조금씩 등장한다. 아사미 집에는 자루에 짐승같은 무언가가 담겨서 꿈틀거리는가 하면, 아사미 주변인물이 토막살인을 당했다느니 하는 소문도 들리고, 아사미의 양부는 반쯤 미쳐있다. 그러다가 결국 주인공도!!

줄거리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몇 가지 인상깊은 부분은 있다. 아사미의 고문도구라든가, 토막난 시체를 모아봤더니 손가락 세 개와 혀 하나가 더 있더라는 이야기라든가, 또 아사미의 '키리키리키리'하는 소리 같은 것들.

그런데 불행히도 너무 호러를 탐해온 탓인지, 전반적으로 충격적인 정도는 아니다. 물론 뭔가 저예산으로 찍은 티가 뚝뚝 묻어나는 1999년작이라 최근 본 츠카모토 신야나 구로사와 기요시, 소노 시온의 영화와는 바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앞으로 근작들을 좀더 봐야 할듯.

그리고 결정적인 점!!여자가 보기에는 그닥 이해할 수 없는 공포영화다. 주인공과 아들, 또 주인공의 친구 등 영화의 남자인물 대다수(진짜 엑스트라 빼고 진짜 등장인물을 다 합해도 대여섯 명이다)가 노골적으로 여자를 혐오하거나 무서워한다. '천박한 여자들, 좋은 여자는 어디 있는거야?'라든가 '여자는 역시 무서워요'같은 대사들이 그렇다.

남자들의 이같은 여성관이 공포를 더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는 사실을, 영화(감독) 자체가 숨기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자가 무섭다는 전제 하에 더 무서울 수 있는 공포'라는 게 여자들에게 공감이 갈 리가 없다. 그래서 후반부의 호러씬들은 그저 잔인해서 무서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전반부와 결말 부분을 통해 감독이 열심히 쌓아 둔 부분들이 허술하게만 느껴지는 효과를 낳게 된다.

포스터 사진이라도 찾으려고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몇몇이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라고 써 놨던데, 정말 이 영화를 로맨스 영화라고 정의하려면 '어느 미친 여자와 어느 뻔뻔한 남자의 로맨스 영화'라는 장르를 새로 만들어야 할 듯하다.

얼른 악몽탐정 2편이나 나왔으면 좋겠다.

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 영화

제목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제 이런 스타일의 제목은 좀 그만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한글 제목보다 훨씬 더 촌스럽게 들리는 효과! 예전에 재미있게 본 '소설보다 이상한(Stranger than fiction)'도 아마 지금처럼 '스트레인저 댄 픽션', 이따위로 제목을 붙여 놨었으면 아마 안 봤을 거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Reign over me는 애덤 샌들러가 연기 변신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볼 만한 영화. 지금껏 애덤 샌들러의 코미디 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지만, Reign...을 보면서 애덤 샌들러의 연기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성공적인 변신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연기를 잘 한 것 같지는 않긴 하지만, 그게 애덤 샌들러 탓이라기보단 감독 탓인 것 같다. 더 잘 끌어내고 더 잘 연출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

이야기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9`11 사건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반쯤 미친 삶을 살아가는 A와 평온하지만 답답한 일상이 지겨운 B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내용. 시작부터 결말까지 예상 가능한 장면들을 쭉 보여준다. 영화 속 A의 정신상태는 충분히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상황으로, 그저 쉽게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님에도 그걸 물고 늘어져서 끝을 보려는 시도도 그닥 눈에 띄지 않는다.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라는 듯, 악인이 갑자기 선인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럼에도 꽤 감정이입을 해 가며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착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부질없어 보여도, 순진해 보여도, 어떻게든 서로 보듬어 나가면 좀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태도에 공감.

데스프루프 - 역시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화창한 초가을 아침에 조조로 본 데스프루프.

뭔가 참신한 걸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물론 전작들이 다 좋았지만, 그러니까 그만큼만 되어도 충분히 즐거울 거란 생각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영화 전반부는 예쁜 여자들이 나온다는 것 빼고는 좀 지루하다. B급스러운 분위기를 너무 오래 뿜어내다보니 좀 생색내는 듯도 하고. 화려한 속어와 조크 등으로 이루어진 대사들을 한국어 자막으로 어색하게 옮겨놓은 탓도 컸다.

그런데 드디어 피 튀기는 장면들이 나오더니, 한차례 감독의 끔찍한 상상력이 번뜩인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 그것 참, 사람은 사람이 죽는 무수한 방법들을 지치지도 않고 개발해낸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한 조이 벨. 킬 빌에서 우마서먼과 대릴 한나의 대역을 맡았던 최고의 스턴트우먼이다. 수수하게 생겼다. 그리고 그 친구 셋. 하나는 연예인, 하나는 연예인 코디, 하나는 조이 벨과 같은 스턴트우먼. 앞서 끔찍하게 죽은 여성들과는 머리, 능력, 분위기, 모든 면에서 다르다. 이들과 변태살인마 커트 러셀의 자동차 혈투에서 당연히도 여자들이 이긴다.

카체이스 장면도 역시 타란티노스럽다. CG 없이, 여자가, 맨손으로, 자동차에 매달려서 사정없이 흔들리는 장면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그러다가 반격에 나서면서 관객들의 긴장은 더욱 고조. 조이 벨이 쇠파이프로 커트 러셀을 푹푹 찔러대는 장면서부터 마구 통쾌해지더니, 여자 셋이 변태살인마를 돌아가며 패는 장면;;;에선 정말 환호를 지르고 싶어진다. 꼭 여자가 남자를 때려서가 아니라 영화를 보게 되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여자 셋이 환호성을 지르며 펄쩍 뛰는 장면에서 화면이 턱 멈추고 THE END가 뜬다. 엔딩 연출 기법 하나로 환호성을 지르고 싶어지는 경우는 정말 이번이 처음. 영화의 분위기와 결말의 내용에 정말 딱 어울리는 방식이다. 뭔가 있다 싶었는데, 씨네21을 보니 이게 'FREEZE FRAME'이라는 기법이고, 옛날 쿵푸 영화 엔딩으로 자주 쓰이던 방식을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답게 이용한 거란다. 엉뚱하면서도 짜릿한, 최고의 엔딩으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걸리는 것 하나. 영화를 보기 전에 어느 기자가 '예쁘고 골빈 여자들은 죽어야 하냐'고 짧게 쓴 걸 봤는데, 확실히 이 부분에선 감독이 할 말이 있을까 싶다.

미국에서는 데스프루프와 함께 로드리게즈 감독의 '플래닛 테러'를 동시상영했단다. 애초에 두 감독이 동시상영키로 작정하고 각자 만든 영화들이다. '플래닛 테러'는 눈물나게도!!!! 내가 사랑하는 좀비 이야기다. 과연 우리나라에 개봉을 할지는 모르겠다.

폭력의역사 2 영화

영화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탓에, 며칠 동안 문득문득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면서 좀더 영화를 알고픈 욕심이 커졌다.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1. 톰 스톨(혹은 조이)은 어떤 사람이며, 왜 과거를 지운 채 살아가고 있었을까?

-> 듀나의 영화평에는, 조이가 왜 톰 스톨로 변신했느냐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었다. '조이는 살인마지만 동시에 철저히 자신의 폭력성을 통제할 줄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살다간 죽도 밥도 안 된 다는 사실을 깨닫고 변신한 것이다'. 참 설득력 있는 추측이기는 하지만, 조이의 변신 이유에 대한 추측은 이 영화를 분석하는 데 있어 사실 별 도움은 안 되는 듯하다. 이후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별달리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차피 그 추측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

더 좋은 질문은 지금의 톰이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이다. 먼저 톰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살인의 추억을 별로 수치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과거에 대해 당당하지도 않다. 병원에 누운 톰은 아내의 추궁에 과거를 떳떳히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조이 있다'는 식으로 조금 비굴하게 군다. 그저 아내에게 거짓말을 해서 미안하고,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고 싶을뿐이다. 결국 톰은 과거의 폭력이 왜 잘못되었는지 아직도 모르는, 여전히 냉혈한같은 인물이다.

2. 비정한 살인마와 푸근한 아빠의 인격이 어떻게 공존하는 걸까?

-> 이 질문도 사실 영화 분석에 대한 기여도를 따지자면 별 영양가 없는 질문일 수 있다. 특히 조이와 톰 같은 두 인격이 같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내 생각에도 짐승같은 살인마가 진심으로 아내든, 자식이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런데 현실을 떠나 영화 안에서만 보자면, 감독은 두 인격의 공존을 통해 인간의 일상에 짙게 배어있는 폭력성을 나타낸 게 아닌가 싶다. 폭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알고보면 폭력에 익숙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tv 쇼프로에서 뚱뚱하다고 놀림받는 개그맨을 보고 웃거나, 사나운 말로 친구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도 폭력이다. 물론 감독이 '그러니까 우리 착하게 살아요~'라고 결론짓기 위해 이런 주인공을 내세우지는 않았을 테지만.


3. 이디 스톨은 왜 '조이'와 섹스를 했고, 왜 그 직후에 싸늘하게 돌변하는 걸까?

-> 계단에서의 정사씬을 두고 film2.0 기자는 '이디와 조이는 폭력을 둘러싼 적대적 공모관계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옳은 말 같다. 그 뒷 문장들이 모호해서 내가 생각하는 '적대적 공모관계'와 정확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식으로 풀어 써보면 이렇다.

자상한 남편 톰과 살아오면서 폭력이란 걸 까맣게 모르고 지냈던 이디는 '조이'와 맞부딪치면서 폭력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부드러움과 합리성과 대화가 아닌, 타인을 움직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서의 폭력 말이다. 그걸 표현한 게 계단에서의 정사씬이다. 앞서의 정사씬과는 다른, 지극히 짐승적인 모습. 이후의 싸늘한 돌변은 이디가 실제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주먹질같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남편에 대한 정신적인 폭력이다. 이디는 이제 남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폭력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디가 이렇게 된 이유는 톰 또는 조이의 폭력 탓이다. 톰도 그걸 알기에 섹스 전처럼 거칠게 이디를 붙잡지 못한다. 그래서 적대적 공모관계다.


4. 아들의 폭력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 일단은 제목처럼 폭력의 역사가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이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들에게는 '조이'와 같은 과거가 없다. 아직 폭력을 모르던 상태에서 자신을, 또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순식간에 폭력을 알아버린 것 뿐이다.

그래서 아들의 반응은 폭력에 대한, 그리고 폭력에 능한 아버지를 향한 혐오로 나타난다. 영화의 뉘앙스와 아들 역 배우의 순진한 얼굴로 보건대(?) 아들이 앞으로 폭력에 맛을 들일 것 같진 않다.

5. 형 리치의 저택에서 벌어진 난투극이 의미하는 것은? 난투극 후 연못가에서 톰 스톨은 무엇을 느낀 걸까?

-> 그냥 영화 줄거리상 필요한 복수씬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형 리치가 등장하는 장면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화면의 질감, 색감이 이전까지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뭐가 다른 건지, 다른 게 맞긴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또 분위기가 꿈 꾸는 듯, 몽환적인 듯한 게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거기서 또다시 살인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이건 정말 모르겠다.
 
 톰이 저택을 빠져나와 연못가에서 짓는 표정은 내가 보기에 후회나 속죄 같지 않다. 그보다는 단순한 육체적, 정신적 피곤에 가까운 듯하다. 조이가 톰으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조이는 살아있음을, 그렇기에 미래의 어느 날에라도 다시 조이가 등장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게 아닐지.


6. 마지막 장면의 의미는?

-> 사람 잡느라 외박하고 돌아온 가장이 비척비척 식탁으로 걸어간다. 누구 때문에 고생이 말이 아닌 아내와 아들은 일단 그를 무시한다. 그러다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딸이 아빠의 자리에도 접시와 포크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망설이던 아들도 빵접시를 아빠 앞에 가져다준다. 아내는 눈물이 얼룩진 얼굴을 들어 남편을 말없이 쳐다보고, 남편도 똑같은 얼굴로 아내를 마주본다. 그리고 끝.

이 결말을 보고 딱 오는 느낌은 '허무하면서도 감동적'이라는 거다. 허무한 이유는 아무래도 감독이 명확한 결론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동시에 감동적인 이유도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관객에게 결론을 내맡겼기 때문에, 그러니까 톰 가족은 이제 폭력가족이 될 수도 있고 평화가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폭력의 역사를 거쳐온 가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폭력성을 드러내놓고 살라는 법은 없다. 조이가 20년 가까이 톰으로 살아오면서 완벽하게 폭력성을 지웠듯, 폭력은 결국 사용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그런데  이같은  모범답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누군가는 폭력을 모르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감독은 이 부분을 짚어내기 위해 결말을 저렇게 처리하지 않았을까.




대강 끼워맞춰본다고 적어내리긴 했지만, 아주 부족한 듯싶다. 해외 평론가들의 평을 찾아봐야 하려나.

폭력의 역사 영화



정말이지 날 위해 만든 것 같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영화.

 

내용은 제목과 일단 관련이 있고, 그리고 그 외에도 내가 못 찾아낸 뭔가가 아주 많은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평론가들에게 자문을 구했건만, 이 영화를 다룬 글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나마 있는 글 중 절반은 내가 보기에도 확연히 질적으로 부실한 평론이었고, 나머지 절반도 필자에 따라 해석이 너무 엇갈려서 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영화 평론은 이따위였단 말인가!!!!

 

무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지만, 해석 따위 던져두고 아무 생각 없이 봐도 재미있는 영화다. 스릴, 액션, 베드신, 유혈낭자 등등 전부 볼 수 있기 때문에.

 

주인공은 비고 모텐슨, '반지의 제왕'의 바로 그 아라곤이다. 시나리오와 감독이 얼마나 채찍질을 하느냐에 따라 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실의 표본으로 만들어도 될 것 같다....라고는 했지만, 이 영화에서 이이의 연기는 사실 채찍질해서 나올 만한 정도를 훌쩍 넘어서는 듯하다. 아라곤의 그 무난한 얼굴에서, 살인자의 나른하고도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Fall out boy 음악



십여년 전, 본 조비부터 시작해서 음악을 들어온 나에게는 룰이 하나 있었다. '젊은 애들 음악은 안 듣는다....=.='. 물론 어디까지가 젊은 애들이냐고 물어도 별다른 기준은 없고, 또 의식적으로 이런 룰을 만든 건 아니다. 어째 지나고 나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다 나이가 30대 중반 이상이라는 것 뿐이다. 또 똑같은 가수라도 젊은 시절의 음악은 마음에 안 차는 경우가 많다. 사랑하는 펄 잼만 해도, 고등학교 때 jeremy같은 노래들에 조금 끌리긴 했었지만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건 96년 앨범 'no code'를 듣고 나서부터다. 그러니까, 외모와 목소리와 노랫말에서 젊은이스러운 혈기가 다 빠지고 난 다음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싶은 가수들이 있긴 하다. 그 중 하나가 Fall out boy. 뮤직비디오를 언뜻 보고 나서 찾아 들었더니 역시 괜찮다. 대표곡인 'This ain't a scene, it's a god damn arms race' 외에 한 곡 더 해서 딱 두 곡만 마음에 들긴 했지만.

여타 '젊은 락커'들과 fall out boy가 다른 건 아무래도 보컬의 가창력. 언뜻 들으면 우선 내지르고 보는 창법이 별 다를 바 없는 것도 같지만, fall out boy의 보컬(아직 이름도 모르는...;사진 오른쪽 두 번째 제일 키작고 통통한 인물.)은 통통한 몸매 덕인지 복근으로부터 울려나오는 목소리가 멋지다. 원래 그닥 개성적이랄 것 없는 목소리인데도 신선하게 들리는 첫 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목소리의 표현력이다. 훈련 안된 내지르기 전용 보컬들이 넘쳐나는 요즘, 저런 젊은이는 드물다. 목소리의 표현력이 좋은 데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열심히 연습한 덕도 있을 거고 무엇보다 좋은 보컬들의 음악을 깊고 넓게 들어온 덕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서, 너희도 얼른 늙어서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지!!(이런 오만한...)

나이스의 숲 영화




아사노 타다노부, 카세 료, 이케와키 치즈루, 키쿠치 린코 등의 출연배우 목록을 보고 주저없이 택한 영화. 처음에는 역시 난해한 일본식 코미디 영화군...하며 지루함을 각오하고 보기 시작했다. 역시 봐도 봐도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스토리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중반부터는 감동의 쓰나미. 광고인 출신 감독 3명이 만든 영화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야말로

 '상상력의 폭발!!!!!!!!!!!!!!!!!!!!'

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코드가 안 맞는 대다수의;;;사람이라면 '뭐야, 이게?'하고 화낼 가능성이 높긴 하다.

이케와키 치즈루 편과 홈룸 편(여기서 안노 히데아키...귀엽다*.*)에선 정말 폭소가 터졌고, '기타 브라더스'편은 아사노 타다노부 덕에 눈이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신기한 생물(???!!)들이 등장하는 부분에선 내 정신세계가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이끌려지는, 말로 설명 못할 그런 느낌이었다. 카세 료 편은 그 희한한 동작들 덕에 흥미진진.

4차원적인 매력!!!!

서머타임머신블루스 영화





자칫 '서머타임-머신블루스'라고 읽기 십상인 데다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지 감도 잘 안 잡히는 제목이다. 보고 나서야 정말 제목 그대로인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긴 했었다.

그래도 우에노 주리가 나오는 코미디라기에 어느 정도 재미는 있겠다 싶었지만.

역시 재밌었다.

'SF'가 뭔지도 모르는 고교생들이 모인 'SF연구동호회'에 갑자기 타임머신이 나타나면서 일이 시작된다. 벌어지는 사건들은 크게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어머, 과거로 가 볼까?'하다가 '앗, 과거가 바뀌면 현재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사건 전개가 매끈하고 등장인물들이 적당히 코믹해서 꽤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결정적으로!!과거, 현재, 미래가 뒤얽히는 스토리에는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부록, 그 아스라한 향수는 언제나 즐겁다.

김훈의 한마디 잡담

남재일과의 인터뷰 중.

"젊었을 때 내 꿈은 밥을 먹는 것이었어요. 신문사에 들어간 것도 목구멍에 풀칠하려고 한 거고. 그런데 어떤 놈들은 사회의 목탁이 되기 위해 들어왔다고 그러대. 저런 황당한 자식들이 있나 했지. 신문사에 들어갔다고 해서 대학 갓 졸업한 놈이 사회의 목탁이 될 리가 없잖아. 어림없는 소리를 하는 거지. 그러면서 자기가 사회의 목탁이라고 하며 다니는 거야."

읽으면서 막 웃었다. 너무 맞는 얘기고, 너무 시원하게 한 대 때려주는 것 같아서.

세 권의 소설을 읽은 후 김훈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긴 하지만, 종종 그가 내뱉은 말들은 머릿속 한가운데를 파고든다.


진중권, 호모 코레아니쿠스

그동안 살짝 무시해왔던 진중권 씨를 다시 보게 되다. 그의 소탈한 모습(학교에 강연을 하러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식사는 학교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때우는 등의)을 알면서도 '살짝 무시'해왔던 이유는 그의 날선 인신공격 때문이었다. 얼마전 100분 토론에 출연해서 뉴라이트 계열의 신지호 씨에게 '왜 아직도 그러고 사세요'라고 했던 발언에 경악한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그처럼 변화와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보수성 자체를 가지고 문제삼는 게 우리사회의 총체적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었더랬다.

그저 재미있어 보여서 집어든 <호모 코레아니쿠스>.  역시 그다운 신경질적인 어투가 곳곳에 뾰족뾰족 날을 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재정권의 군기잡기와 신속한 근대화 및 자본주의화가 한국인을 어떤 모습의 인간으로 만들어냈는지를 짚어낸다. 드문드문 한국 작가들의 미술작품을 통해 설명을 뒷받침하는 구성도 재미있다.

내용 중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공공장소에서 싸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떠들어대는 한국인,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내 자신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이지, 서울에 있는 학교까지 왕복 4시간 가량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니 시끄러운 사람들이 제일 싫다. 지하철 상인들이야 생계를 위해 스스로도 커다란 불편과 위험을 무릅쓰고 상행위를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연인과의 대화까지 생중계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또 싫은 건 타인과의 접촉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 겨울철에는 옷이 두꺼운 덕에 괜찮지만, 살과 살이 부딪치는 여름철에는 정말 죽을 맛이다. 얼마 전에는 내 옆자리에 앉으려던 아주머니가 아무 말도 없이 내 무릎을 짚고 무사히 안착(!)하시는 일까지 있었다. 그땐 정말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내가 무슨 지하철 손잡이도 아니고! 어쨌든 지하철 뿐만이 아니라 거리에서, 서점에서, 심지어는 미술관에서도 이런 시달림 때문에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도 뭔가 사회적으로 이런 일들을 적극적으로 문제시하는 시각은 도무지 나타날 기미가 안 보여서 답답한 차에 진 씨의 글을 보며 반갑기 짝이 없었다.

책을 읽으며 제대로 된 개인주의, 함부로 타인의 평온을 방해하지 않는 개인 존중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말은 쉬운데, 사람들이 조금만 모인 곳에 가도 '될까?'싶다.

이전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