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십걸(Gossip girl) 잡담

온스타일 채널에서 '가십걸'이라는 드라마가 방영중이다. 내 자신이 TV를 볼 시간이 거의 없다 보니 두 회 정도 봤지만, 볼 때마다 꽤 재밌었다. 내용 자체는 THE O.C 등과 다를 바 없는 흔한 고등학생 드라마다. 부잣집 애와 그렇지 못한 애, 부모님과의 갈등, 마약중독, 남자친구, 여자애들 기싸움 등등이 주된 소재다. 그런데 포맷이 독특하다. 중간중간 나레이션이 들어가는데, 이 나레이션의 주체가 가십을 전해듣고 나르고 확인하는, 사건 밖의 인물(가십 걸)이다. 사건의 주인공이나 그 친구가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 탓에 시청자는 더 못된 마음(?!)으로 킥킥거리고 조마조마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까맣게 모르는 새 이야기를 이리저리 옮기고 다니는 즐거움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거다. 가십 걸이 하나의 인물인지 다수의 인물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듯한데, 그래서 더 재밌다. 

입사 두 달 째, 종종 '가십걸'을 떠올리곤 한다. 견습기자들과 제대로 말 한번 안해 본 차장들, 그리고 편집국장까지 우리에 대한 정보를 꽤나 자세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얘는 노래방에서 어떻게 논다더라, 쟤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다더라 등등. 물론 견습들에 대한 애정의 표시라는 게 마구 드러나서 상관은 없지만, 또 헛소문만 아니면 괜찮지만, 가끔은 뭔가 우스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들건 말건, 직업이 어쨌건, 사람은 참 남의 일에 관심이 많구나 싶어서.

 


Soul town - The motherhood 음악

여유롭고 화려하면서도, 갈 길을 잃지 않는.

오션스13에 쓰였던 곡이라는 것 빼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반 고흐전

사실 별로 끌리는 전시회는 아니었다. 고흐의 그림이 예쁘긴 하지만 그닥 진지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일단 제껴놓고 보는 취향 탓도 좀 있긴 하지만. 그런데 며칠 전 문화부장의 명에 따라 이 전시회에 다녀오게 되었다. 부서별로 돌면서 교육을 받는 중인데, 문화부장의 지론은 '문화 뭐 별 거 있냐, 그냥 가서 보고 와라'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립미술관엘 갔더니! 폐막을 앞둔지라 관람객들이 들끓었다. 방학이 끝나서 초중고생들이 없는 대신 유치원생 단체관람 패거리(도대체 그 조그만 애들한테 뭘 가르치려고 데려오는지 모르겠다;;)들이 조금 있었고, 중년층이 많았다. 도슨트 앞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어쩔 수 없게도 분위기는 매우 산만했다. 툭툭 밀치고 다니는 인간들까지 다수 출몰해서, 내 돈 내고 봤으면 정말 짜증났을 뻔 했다.

그래도 그림이 좋긴 했다. 특히 일본 목판화 분위기가 드러나지 않는, 초기의 인물화들이 괜찮았다. 가난한 사람들의 남루한 모습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싶다. 고흐가 '영원의 흔적을 지닌 사람들을 그려내고 싶다 - 빛과 색채의 떨림으로 영원을 그려내고 싶다'라고 했다던데, 초기 인물화들이 이같은 말에도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이 빛나는 밤이라든가 해바라기 등은 역시 전시되지 못했다. 고흐전, 밀레전 하는 식으로 몇 십만명씩 관람객이 모이는데도 정작 대표작들은 볼 수 없다는 게 안습이다.

p.s - 같은 이유로 리움미술관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장욱진 화백의 그림인데 다른 그림들을 찾아보니 역시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많다.


http://blog.naver.com/jelujelu/30017237987

끄적임. 잡담

1. 역시 인간은 발전한다. 매일 술을 처마시다 보니 술이 좀 늘었다. 선배들이 뿌듯해 하고 있다. 대신 여명808, RU21, 칡즙 등등을 매일 복용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 몽롱한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다. 사람 이름이나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방금 뭘 하려 했는지 한참을 생각한다거나, 말을 못 알아 듣는다거나. 나는 악몽을 꾸면 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은 사람들(좀비나 술주정뱅이같은;;왜인지는 모르겠다)'이 등장하는 편인데, 현실이 악몽처럼 되지는 않을까 조금 겁내고 있다.

2-1. 기업 홍보실에 전화하면, 나보고 '기자님'이랜다. 예, 기자님, 제가 확실히 알아보고 전화드리겠습니다. 내가 기자라는 것도 어색한데 '님'까지 붙여버리니까 정말 안절부절이다. 그저 견습기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앞으로도 이런 호칭은 듣고 싶지 않다.

2-2. 기업 홍보실 사람들이나 어디 공보관들한테 밥 얻어먹는 것,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받는 것도 되게 어색하다. 원래 그 사람들 일이 그런 거고 다 그렇게 돌아가는 거라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가 싶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오고가는 공허한 잡담들이 꽤나 성가시다.

3. 불평을 쭉 늘어놓긴 했지만, 직업은 잘 고른 것 같다^-^얼른 정신없는 견습기간이 끝나고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길 기다리고 있다.


Arborday님 주최 오프모임 잡담

오프에 참가하셨던 ginger님의 글. 이 분은 알고 보니 동문이었다.

080227 새벽 : 새터, 오프



오프 자리에서도 말했고 이 블로그 자체에서도 느껴지듯 난 블로그질을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부모님과 살던 집에서 나온 이후로는 거의 사적인 용도로 컴퓨터를 만질 일 자체가 없어서 요즘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arborday님을 포함한 다른 영화 블로거들과 꼭 나누고 싶은 대화가 있을 만큼 영화에 미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rboryday(이하 식목일, 영어 쓰기 귀찮음)님의 오프에 참가하겠다고 나선 건 궁금해서였다. 중학교 때나 몇 번 가봤던 오프모임의 분위기가 새삼 궁금해지기도 했고, 매니아들의 세계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인사동에서 식목일 님 및 동생분, 니야님, 천용희님, 연주님, ginger님, almaren님을 만났다. 다들 의외로 사교적(무슨 의미?;;;)이시다 못해 정말 재미있는 분들이셨다. 블로그로만 뵙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말솜씨들이 대단하셨다. 게다가 오프 참가자들 대다수의 외모는 (실례지만) 매우 귀여우셨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식목일 님이 예고하신 대로("보통 영화 매니아나 평론가들은 사석에서 영화 이야기를 오히려 거의 안하는데 천용희 님은 정말 영화 얘기만 해요") 천용희님이 영화이야기를 꺼내셨다. 식목일 님과 한참 영화 이야기를 하시는데, 내가 평소에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던 게 무색할 정도로 모르는 이야기가 대다수였다. 모르는 영화, 모르는 감독, 모르는 배우. 정말 이게 매니아의 세계구나, 하고 실감했다. 내심 문화부 기자가 되어서 영화평이라도 몇 줄 쓰고 싶다는 소망도 초큼 있었는데 그냥 접어야 되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자리가 섞이면서 니야님, 연주님, ginger님, 식목일 님의 동생분(죄송스럽게도 성함 중 한 글자가 생각이 안 나는)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그룹에서 영화 이야기는 거의 안 나왔다. 대신 어떤 남자배우가 색기가 넘쳐흐른다느니, ginger님은 누님들 사이에 끼어서 좋겠다느니....그런 수다를 점잖게 나눴다. 니야님의 세계여행 계획을 들으면서 부러워하다가, 식목일 님 동생분의 번지점프 이야기에 미친듯이 웃기도 하고. 정말 즐거웠다.

회사라서 길게는 못 쓰겠고, 얼른 다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릭 - 지독히도 쓸쓸한. 영화

희한한 추리영화다. 마약이 오가다가 사람도 죽고 난리도 아닌데, 무대는 고등학교다. 무슨 특이한 고등학교도 아니고 nerd그룹과 치어리더그룹, 불량청소년 그룹과 엘리트 그룹 등등이 공존하는 평범한 고등학교다. 자칫 학원물로서의 요소도, 추리물로서의 요소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다가 끝나기 쉬운 구조다.

그런데 영화는 역시 희한하게도, 미치도록 재미있다. 따돌림과 부모님 차 빌려타기, 교사의 압박처럼 학교스러운 이야기가 중간중간 끼워넣어지지만 영화는 추리영화로서의 본색을 절대 잃지 않는다. 어두운 터널에서의 살인, 묵묵히 집요하게 단서를 수집하는 탐정, 유능한 조력자, 골치아픈 방해꾼.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조금만 캐릭터 설정을 잘못했거나 배우들이 연기를 잘못했다면 영화 전체가 망가졌을 듯싶다.

여기까지 영화 <브릭>의 좋은 점들을 나열했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점은 따로 있다. 등장인물들의 쓸쓸함과 인간적인 고민을 담아냈다는 것. 무대가 고등학교이니만큼 얼핏 십대스러운 고민으로 비치지만, 뭐 사람이 나이가 먹는다고 얼마나 달라지던가? 많이 공감하면서 봤다.

* 기타 1 - 어머니가 씨리얼과 우유와 주스를 차려주는 장면은 정말 행복할 만큼 재미있었다.
기타 2 - 주인공은 히스 레저를 닮은 듯.
기타 3 - 이 영화의 스타일은 정말 내 취향이다. 엔딩곡 빼고.
기타 4 - 꼭들 보시길.

참을 수 없는 죽음의 가벼움? 기자연습

말로만 듣던 국과수에 가서 시체부검 과정을 견학했다. 겉으로 보기에 국과수는 매우 허름해 보였지만, 내부는 대리석 바닥도 있고, 나름 고급스러워 보이는 강당도 있고, 의외로 럭셔리한 분위기였다. 이건 내가 남몰래 동경하던 그런 분위기가 아닌데, 싶었다. 그런데 바로 옆 동의 시신부검실로 이동하면서 "역시 이런 거!"하고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지하로 통하는 70년대틱한 계단과 복도. 그리고 포르말린에 담긴 장기로 채워진 책장.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부검실에 들어가서는 주머니에 손 집어넣지 말고, 잡담도 말고 엄숙하게 견학하라"는 교육담당자의 말을 들었다.

그날 그날의 부검 스케줄에 언론재단 교육생들의 견학을 끼워넣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부검실에 들어갔을 때는 벌써 시신의 배가 열려 있었다. 시신이 거무스레하고 빳빳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창백한 아기피부같은 느낌이었다. 50대 남자의 시신인데도 이상하게 깨끗한 느낌이다. 물론 어떻게 사망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겠지만.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시체들, 정말 잘 만든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에 나오는 시신들하고 비슷해 보였다. 한때 살아 움직였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마네킹 같은 몸이었다.

문제는 냄새. 다행히 겨울이라 덜했지만, 검시관이 움직일 때마다, 그리고 장기를 들출 때마다 역한 짐승같은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겼다. 전날 술을 마신 친구는 부검실을 나갔고, 목도리 등으로 코를 막은 친구도 여럿 있었다. 이 냄새는 부검 견학이 끝나고 강의를 들은 후 국과수를 떠나기 전까지 코끝을 맴돌았다.

인상깊었던 건 두개골과 얼굴 가죽. 두피를 가르고, 두개골을 여는 과정에서 얼굴 가죽은 목까지 밀려내려간다. 우리가 서로를 구분하고 평가하고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얼굴 가죽은 말 그대로 한 장의 가죽에 불과했다. 얇고 헐렁헐렁한. 그렇게 목 위의 가죽을 밀쳐놓고 두개골을 자르는데, 검시관들은 톱을 쓴다. 전기톱을 쓰면 가루가 날리기 때문이란다. 득득득 소리를 내며 두개골이 잘려나가고,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들어있을 것만 같았던 뇌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내졌다. 검시관들이 뇌 무게를 재고 출혈여부를 살피고 두개골 내부에 금 간 부분은 없나 살핀 후 다시 뇌를 집어넣고 아까 잘라낸 두개골을 끼워맞췄다. 플라스틱 블록을 끼워맞추는 듯한 소리가 났다.

겨우 한 번 부검실에 들렀다고 해서 커다란 깨달음을 얻지는 않았다. 상상했던 것처럼 이게 시체다 하고 실감이 나지도 않았고, 그 자리에서는 일단 신기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날 내내,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끔 부검실 풍경을 떠올리면서 조금은 반성을 했다. 죽음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태함에 대해서. 물론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떠올리지 않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나태'라고 표현하는 건 지나칠지도 모르겠지만, 좀 더 내 삶에 진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육中 잡담

저번 주부터 언론재단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기자와 기자정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기사쓰는 법, 언론보도로 인한 분쟁예방, 정보공개청구, 엑셀실습, 동영상취재, 법의학의 이해...등등의 수업을 2주일간 듣는다. 강사들은 대부분 현직기자. 거의 대부분 언론사의 수습기자들이 이 과정을 거치는데, 이게 실제로 나중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듣기는 매우 재미있게 들었다만. '스스로 대변할 힘이 없는 이들을 대변하는 게 기자다'처럼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당연하게 들릴 이야기도, 이제 곧 취재를 해야 될 사람에겐 절대명령;;만큼이나 묵직하게 들린다. 내 스스로가 '정의감에 불타는 기자상' 따위를 꿈꿔온 게 전혀 아닌데도 말이다.

어쨌든, 대강 9:30 A.M ~ 6:30 P.M 의 교육시간표를 보고 이 2주간이 마지막으로 한가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닥 그렇지가 않다. 회식도 있고, 과제물도 있고, 만나야 될 사람들도 있고. '앞으로 바빠져도 일주일에 책 2권 쯤은 읽을 수 있겠지' 했던 생각이 참으로 순진하게 느껴지고 있다. 이번주엔 영화도 한 편 못 봤다. 심지어는 이번주에 신문 한 부를 제대로 읽은 날이 오늘 하루뿐이다;;;;;그러다 보니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도 든다. 이런 기분을 꿰뚫고 있는지, 강사들, 그리고 우리들의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언론재단 분들은 숫제 묻기도 전에 '기자는 원래 자기소모가 심한 직업'이라고 못박는다. 자기계발 따위는 할 시간이 없을 거란다. 덧붙여 1년 안에 기자가 아닌 모든 친구와 관계가 단절될거란 악담까지.

물론 종합지 기준의 이야기라, 종합지보다는 한가한 경제지 기자의 사정은 한결(혹자는 훨씬,이라고도) 나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교육기간인 지금보다도 한가하기는 힘들 듯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갑자기 앞으로 다람쥐 쳇바퀴스러운 삶이려나 싶어서...물론 직업이 기자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만, 내 직업으로부터 얻은 것들을 곱씹을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다면 그것도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아무리 많이 주워듣고 경험하고 다닌다고 해도, 뭘 버리고 뭘 배울지 생각할 수 없다면.

섣부른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백수생활은 정말 즐거웠는데, 정작 요즘은 뭔가 마음이 약해져 있다 보니. 누가 조언 좀!




판의 미로 영화

나는 판타지를 지루해하는 편이다. 판타지 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대적 시공간을 제외한 다른 배경의 영화에는 대부분 끌리지가 않는다. 중세가 배경이라든가 등등.  그리고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도 싫다. 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선지, 당최 감정이입이 되질 않는다. 귀여운 동물이 나오는 영화가 낫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는 이같은 악조건(!)을 두루 갖춘 영화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이처럼 안 끌리는 영화를 본 이유는, 광고로 드러난 바와는 많이 다르다는 지인의 평 때문이다. 이미 이 감독의 '악마의 등뼈'를 본지라 그냥 지나칠 수 없기도 했다.

'판의 미로'는 한마디로 어두운 판타지다. FANTASY, 라 하면 사람들의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대신 구현해내는 무언가가 되어야 하건만 '판의 미로'는 정반대다. 주인공인 천진난만한 얼굴의 소녀는 공주가 되어 현실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 듯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판타지는 죽어가는 소녀의 환각 속에서만 존재한다.

판타지가 한갓 백일몽으로 전락하면서 현실의 잔인함은 관객에게 더더욱 쓰라린 충격을 안긴다. 스페인 내전 시기 군인들의 잔인함, 그리고 인간의 잔혹함. 영화는 어쩌면 판타지란 없음을, 그러니까 현실도피는 불가능함을 역설하면서 현실에 맞설 것을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군인들에 맞선 힘없는 게릴라들처럼.


한 계단 오르다. 뭐랄까 진지해지고 싶을 때

꽤 길었던 수험생활에 매듭을 지었다. 잠결에 합격 소식을 듣고 딱 2분은 좋았는데, 곧바로 이런저런 슬픔 비슷한 게 물밀듯 밀려왔다. 아이 같은 투정일 지도 모르지만, 이제 되돌아올 수 없는 개천 비슷한 걸 건너는 듯싶어서. 물론 개천 너머도 행복하겠지만, 지난 1년은 정말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흘려보내고 나서 비로소 알았다'가 아니라 그 시간을 겪는 와중에도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로.

멈춰 있을 것만 같던 내 삶이 이제 멀미가 나도록 빠르게 굴러가겠지. 그 속에서 정신을 놓지 않도록 애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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