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쿼시 잡담

3,4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운동에 뜻을 가져본 적은 없다. 여기서 뜻이라 함은 운동선수가 되겠어!!이런 거창한 게 아니라, 운동이 재미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체력장에서 제자리 멀리뛰기 90cm.............(보통은 자기 키만큼들 뛴다. 물론 별 의미없는 체력장이라 성의없이 뛰었다고는 한다지만).....라는 악몽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3년 전엔가, 갑자기 권투를 하겠다고 나선 이유를 나도 잘은 모르겠다. 그땐 뭔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영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어쨌든 1년 가까이 체육관에 드나들면서 알게 된 건, 1.난 역시 운동에 별로 소질이 없다 2. 그러나 운동은 재미있다, 이 두 가지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1번은 알고 있었지만 2번이 가능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는데, 그리고 지금도 왜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굉장히 재미있다. 독서나 산책이나 피아노연주와도 비슷한 급이면서도 전혀 다른 재미.

한 넉 달 전에 스쿼시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도 벌써 기억이 잘 안 난다. 딱 보기에 매력적인 스포츠도 아니고. 그러나 역시 어쨌든, 4개월간 조금 배운 결과 1. 운동에 별로 소질이 없다 2. 그러나 운동은 재미있다, 라는 앞서의 결론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초반에 자세 잡는 연습만 할 때는 뛰고 싶고 땀 흘리고 싶어서 권투가 그립긴 했지만, 요즘에는 나름 힘들게 뛰어다니다 보니 권투보다 조금 더 괜찮은 운동같기도 하다. 일단은 스파링을 하고 싶어도 얼굴에 멍들까봐 못하는 안타까움, 같은 게 없다. 그리고 좁다란 코트에서 조그만 공을 친다는 게 꽤 귀여운 맛이 있다. 어찌보면 좀 답답한 감도 있겠지만.

나하고는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았던 짓들!로부터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을 얻었다. 인생은 역시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제 맛.






거만한 매력, 캘빈 해리스 음악



그간 잘 들어오던 캘빈 해리스. 목소리만 듣고 40대 아저씨까지 상상했었다. 게다가 'I get all the girls'라든가 'I created Disco'라고 뻔뻔스럽게 노래하는 게 상당히 아저씨틱하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오늘 심심한 김에 뮤직비디오 등속을 찾아보니 너무너무너무 매끈한 84년생, 영국에선 꽤 인기인 듯. 이렇게 캘빈 해리스가 메이저스러운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자 갑자기 좀 정이 떨어진다. 그래도 곡은 좋다만.

어쨌든 오늘 네이버와 유튜브를 뒤지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때는 좋아하는 곡이라든가 음악인이 생기면 어떻게든 정보를 긁어모았었더랬다. PC통신 rock 동호회(시끄럽고 잘 알려지지 않은 밴드를 좋아할 수록 대접을 받던!)가 주된 소스였고, 그 외에는 Hotmusic이라든가 Sub(표지라든가 레이아웃이 제일 세련됐으나 금방 망해 없어진)같은 잡지를 꼬박꼬박 챙겨 보기도 했다. 그래서 업데이트는 조금 느릴지언정 한번 관심을 가진 음악인에 대해서라면 그럭저럭 많은 정보를 꿰차고 다녔었다.

지금은 반 년 넘게 들은 캘빈 해리스의 얼굴을 이제야 알았을 정도로 그런 데 무심해졌다. 예전만큼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선지, 아니면 아무 때고 정보를 구할 수 있게 되어서인지.

그나저나 요즘 것들(!)은 이상하게 목소리와는 달리 잘 생긴 것 같다. 얼마 전에 일본밴드 Fujifabric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니, 또 미소년이다. 지난 일 년간 목소리만 들어본 바에 따르면 분명히 딱 인디밴드스러운, 뿔테에 중절모에 캔버스화에 특징없게 생긴 얼굴들, 이어야 하는데.
 




Eastern promises를..... 영화

1. 봐버렸다. 이거 어차피 개봉여부도 불투명하고, 다행히 개봉 하면 극장 가서 다시 볼 거니까, 하면서. 개봉이 계속 미뤄지면서 극장에서 볼 가능성이 희박해진 플래닛테러는 꾹 참고 기다리면서도 이스턴 프라미시즈는 봐 버린 심리는 과연.

<폭력의 역사>와 외양은 상당히 비슷하다. 비고 모텐슨 주연. 구세대와 신세대 마피아의 대립이라든가, 함부로 밝힐 수 없는 주인공의 신분(!!!영화를 보면 안다)이라든가, 마피아남과 일반녀의 사랑이라든가, 그런 흔한 소재들을 집어넣어서 일단은 누가 봐도 재미있을 법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소재를 사용한 다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대단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극장에서 제대로 보고 난 후에. 폭력의 역사도 망했는데 이게 과연....싶긴 하지만. 얼른 다시 보고 싶은 마음 뿐이다.

2. 비고 모텐슨이 정말로 '열연'했다. 사우나에서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은 영화역사상 전무후무하다고 들었다. 미리 소식을 접했을 때는 설마 뭐 얼마나 나오려고, 싶었는데 보니까 정말 아슬아슬...한 정도가 아니라 정지 버튼을 누르면 다 보일 만한, 위험한 수위다. '바벨'에서 기쿠치 린코 따위는 상대도 안 된다. 알몸으로 뒹굴며 싸우다가 나가 떨어지고, 그러다보니...아무리 혼자 보는 거라지만 남사스러워서^-^ 차마 정지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어쨌든;;어째 폭력의 역사 때보다도 더 연기가 좋아 보인다. 폭력의 역사를 보면서 정말 최고다, 싶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더 최고다, 싶다. 더러운 독사같은 표정과 무거운 짐을 짊어진 남자의 쓸쓸한 표정이 수시로 교차하면서 가슴을 찔렀다.

영화에서 비고 모텐슨이 입고 나온 수트는 심하게 멋졌다. 나오미 왓츠도 정말 '꽃 한송이' 따위의 진부한 표현마저 떠올리게 할 만큼 예뻤지만, 비고 모텐슨의 수트에 한 표 더. 아래는 뭔가 시상식에서 참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비고 모텐슨.





시 두 편 뭐랄까 진지해지고 싶을 때

1.
늦가을 청량리
할머니 둘
버스를 기다리며 속삭인다

"꼭 신설동에서 청량리 온 것만 하지?"

                                       < 인생 / 유자효 >


2. 죽은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사람도 보이지 않는 곳까지
어디에

어디까지 둥둥 살코기는 떠다니는가

가까운 냄새는 얼마나 빨리 없어지는가
씻은 듯이
흰 이빨은 공허하고

개들은 어디까지 튀어나왔는가

작은 코의 한계와
활짝 열렸다가 깜깜해지는 주둥이와
허공의 무한함 속으로

나는 왜 살코기를 떼어 멀리 던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없어지는가

                                 < 허공을 물어뜯는 개들 / 김행숙 >



둘 다 신문 한 켠에 실린 시다. 둘 다 지하철에서 읽고는 한동안 두근두근 했다. 첫 번째 시는 중앙일보에서 봤다. 오피니언면 한구석에 시를 실어놓는 신문들은 많지만, 중앙일보가 좋은 점은 신달자 시인의 짤막한 해설이 곁들여진다는 거다. 그런데 이 해설이 시 자체보다도 좋은 황당한 경우가 많아서 정말 즐겁다. <인생>에 대해 신씨는 이렇게 써 놓았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 울컥 눈물도 날 것 같다. 정신이 번쩍 든다고 말해야 할까. 모르는 일이 아니지 알고는 있었다. 다들 그렇게 꼭 신설동에서 청량리 온 것만 한 인생을 살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앞서 가셨는데도. 그런데도 짐짓 모른 척했던 그만큼의 인생을 처음 보듯 여기서 본다."

(1분간 또다시 감동의 물결..................................)

두 번째 시는 'my favorite' 한국일보에서 봤다. 역시 돈 없고 사람 없는 신문사답게ㅠㅠ 그냥 시 한 편하고 시인의 약력만 짤막하게 던져놔서 첨엔 뭔 말인가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마도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인 듯싶다. 보이지 않게 소모되어 가는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은 개들이 살코기를 먹듯 하다! "우리는 어떻게 없어지는가"하고 묻는 마지막 문장의 울림이 대단하다.





더 재킷 영화

(스포일러 있어요.)

무슨 영화인지도 제대로 안 알아보고 에이드리언 브로디 때문에 봤다. 결과는 실망.

제목의 '더 재킷'이란 정신병원의 구속복을 말한다. 정신병자로 몰린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구속복을 입고 시체보관함에 갇히면, 미래로 갈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자기가 며칠 후에 죽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어찌저찌 여자(키이라 나이틀리)도 하나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등등. 조-금 식상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즐거울 수 있는 스토리고, 이래저래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을 끼워넣으려고 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쉽다. 영화 속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정신상태만큼이나 모호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그러다 보니 나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만 흥분해서 괜히 오버하는 걸로 보이기 십상이다. 에이드리언 브로디와 키이라 나이틀리가 아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급히 연인관계에 돌입함(이게 정말 안습)으로써 실소를 터뜨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노력한 덕에 바백도 멀쩡해지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게 마음에 든다. 노력한 사람은 보상을 받아야 하는 법. 안 그러면 너무 불쌍했을 듯. 누가?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더 재킷을 보면서 깨달았는데,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마스크는 굉장히 fragile하면서도 고상해보일 수 있지만, 잘못하다간 정말 fragile한 바보같은 얼굴로도 돌변할 수 있는 것 같다.;





악몽탐정 - 자기파괴를 꿈꾸는 사람들 영화

 



츠카모토 신야 감독, 마츠다 류헤이 주연의 <악몽탐정>. 우리나라에서는 개봉을 하지 않았고, 부천인지 어디선가의 판타스틱영화제에서만 상영했다. 일본에서 반응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2편도 제작중이라고 한다.

대강의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앙상한 초자연스릴러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주인공 마쓰다 류헤이는 말 그대로 '악몽탐정'. 사람들의 꿈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을 짓누르는 과거라든가, 뭐 그런 것들을 해결해 주는 일종의 초능력자 또는 심령술사다. 그런데 '제로'라는 인물에게 전화를 건 사람들이 잔인한 방법으로 자살을 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그래서 또다른 주인공, 형사로 등장하는 히토미가 마쓰다 류헤이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래서 이 둘이 '제로'와 이래저래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물론 대부분 꿈 속에서.

그런데 직접 영화를 보면 일단은 굉장히 재미있다. 내 자신이 어둡고 피튀기는 영화를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그런 취향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참신한 소재를 긴박하게 잘 엮은 영화다. 후반부에서 조금 늘어지는 감도 있고, 첫 영화출연인 히토미의 불균질한 연기도 문제다. 또 결말은 관객이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이상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겁니까',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커다란 흠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제로'로 출연하는 감독 본인의 놀라운 연기력 덕에 조그만 흠집 따위는 눈에 안 들어올 정도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피를 튀길 것이냐'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감독이 감독이다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그 쫓아올 때의 소리가!!!!

참, 그리고 이 영화의 포인트가 또 있다. '미니스커트에 아찔한 하이힐을 신고 근무하는 여형사'라는 유치한 설정을 굉장히 뻔뻔스러우면서도 능숙하게 이용했다는 것. '자폐증적인 초능력자'라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살벌한 영화에서 만화적인 요소를 시침 뚝 떼고 사용했다는 게 정말 재미있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처음 본 지는 꽤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글을 끄적이는 건,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던 탓이다. 되씹다 보면 <악몽탐정>은 상당히 슬픈 영화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이 얼마나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어하는지 그려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해맑게만 보이던 히토미의 동료형사(안도 마사노부)는 자신이 얼마나 세상을, 그리고 스스로를 죽여버리고 싶어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히토미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냉철한 인물인지라 애써 머리로 부정하려고는 하지만, 그녀 안의 어두운 그림자는 '어서 스스로를 놓아버려'하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제로에 의해 끌려간 마음 속 밑바닥에서는, 이같은 사실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다. 제로가 '죽고싶지 않냐'며 추궁하는 말들은 너무나도 유혹적이다.

잠들어버리면 제로에게 난도질을 당하게 되는 상황에서, 히토미는 몰려오는 잠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여기서 히토미가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고 온몸을 쓰다듬으며 신음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사투를 벌이는 형사의 표정이 아니라 침대 위에서의 표정에 가깝다. 처음에는 이 장면을 보고  보고 누가 아이돌 출신 아니랄까봐 예쁘게만 보이려고 한다, 싶었는데 츠카모토 신야가 그렇게 놔둘 감독은 아니다. 게다가 굉장히 성적인 상징 같은 데 집착했던 전작들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죽음에 대한 욕망은 성욕만큼이나 본능적임을, 그리고 그만큼이나 지독하고도 강렬한 것임을 표현한 것 같다.

<악몽탐정>을 이렇게 읽는 데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국내개봉을 안 한지라 평론을 찾을 수도 없고. 영어권 영화 사이트에서나 한번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자기파괴에 대해서도 좀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이쯤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려 생각의 실마리를 잡아보자면, 후지타 쇼조는 이렇게 말했다.

"지적(知的 )모험을 회피하기 때문에 흔치 않은 복장이나 사치로 모험 욕구가 집중되는 것이다. .....  폭력에의 열중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다. "사악한 파괴성은 성장에 실패함으로써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다."

지나치게 매끈해진 사람들. 그래서 권태로운 사람들. 권태 - 생존의 본능마저도 역행하게 할 만치 강력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최첨단의 세상이, 근본적으로 개개인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아니면 그 반대일까?

(그런데, 다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 영화는 슬픈 영화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악한 영화다. 깜빡 속을 뻔. 내용이야 어쨌거나 잔혹한 난도질 장면을 주요한 오락거리로 제공하는 영화니까. 감독은 분명히 이걸 즐기고 있다;; )

p.s - 영화 속에서 히토미의 아래와 같은 차림은 매우 훈훈했다. 일본여자스런 가느다란 목소리로 안 되는 노래를 부르기보다, 뻣뻣함을 무릅쓰고 춤을 추기보다, 아예 이런 컨셉으로 나가는 건 어떨지.



오래 된 다이어리 잡담

1. 4,5년 전에 쓰던 다이어리를 꺼내 보다가 다음과 같은 글귀를 발견했다.

< 각 개인의 내면에 자리잡은 판타지의 크기는 유아기 때 정서적으로 잘 보살핌받지 못한 정도와 비례한다. >

옮겨적은 건 맞는데, 어디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다시 봐도 고개는 끄덕끄덕하게 된다. 오타쿠, 혹은 오타쿠 기질이 다분한 사람들...이 외에 판타지가 강한 인간유형은 또 어떤 게 있을까?


2. 이런 글도 적어놨었다. 중국으로 도피성 어학연수를 떠나기 직전이었는지,

<...중국에 갔다오면 어쩐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내가 될 것 같다는...주절주절%&^#$^&*>

..이라고도 끄적여 놓았었다. 이제 5년이 지나고 보니, 역시 난 감이 좀 괜찮다. 앞으로 좀더 나의 동물적인 직관에 의지해도 좋을 것 같다. 호호호.


3. 기본적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내 모습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겨우 5년 전이지만 그때 나는 내 자신을 좀더 미워했고, 사람도 좀더 싫어했고, 좀더 비관적이었다. 그런데도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어서, '한동안 지속되었던 아픔이 가시면 조금이라도 강해지거나 지혜로워지는 걸까?'하는 조심스런 질문을 가슴에 묻었었다.

이제는 그때같은 초조함은 훨씬 줄었다. 역시 부딪치면서 배우는 거구나.


4. 또 이런 글도 적어놨었다.

< 오래 가는 행복은 정직한 것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 리히텐베르히>

이걸 적어놓을 때만 해도 '난 앞으로 정직한 것들을 많이 찾을 거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과연;;


5. 다이어리에 쓰여진 바에 따르면, 그때 겨우 스물아홉살이었을 뿐인 한 선배는 언제나 '이제 뭘 해야 되죠?'하고 묻고 싶어진다고 했다. 아마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언제나 무기력하게 모든 것을 냉소했었다. 그런데 이 선배는 지금도 똑같이 무기력하다. 무기력하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6. '자살론'의 뒤르켐이 이런 말도 했구나. 어느 책에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을 사회와 분리시키고 시장을 '도덕이 적용될 수 없는 자연적인 질서로 본 자유주의의 사고에서 '무도덕'은 불가피하다.>

오호라! 5년 전의 나도 이런 데 관심을 가졌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7. 굳이 예전 다이어리를 곱씹어 가며 이런 짓을 하는 건, 낼 모레가 시험이기 때문이로다....젠장젠장젠장;;

안암동 커피하우스 '보헤미안' 잡담

도대체 그 골목에는 커피집이 있을 만한 구석이 없는데, 싶었다. 매주 한두 번씩 점심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그런 커피집이 있으면 진작에 눈에 띄었어야지!

하지만 커피집은 정말로 있었다. 그것도 제일 많이 지나다닌 골목에 버젓이. 허름한 빌딩에 허름한 간판에 '지하'라는 지리적 요건 탓에 제대로 속아 넘어갔던 거다.

미리 인터넷 검색을 해 봤더니, 혹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커피를 맛있게 만드는 집'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설레는 가슴을 안고 입장.

내부는 의외로 침침한 편이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커피관련도구, 원두자루 등등 때문에 정신도 조금 사납다. 테이블과 의자는 꽤 오래되었다. 음악 선곡은 박완규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과 영화 '샤인'에 나오는 그 아리아가 마구 뒤섞여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꽤나 편안하다. 나중에 온 내 친구들이 조금 그 분위기를 망친 듯도 하지만서도.

그리고 커피맛은..........맛있다. ㅠㅠ      ->이딴 표정을 짓고 싶어질 만큼 맛있다.

아직 커피를 많이 마셔본 편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제일'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취향에는 딱 맞는다. 신 맛보다는 쓴 맛!!!그러면서도 고소하고! 더러운 강물처럼 진한!!!!

이날 내가 시킨 커피에는 '아마존 폭포같은'이라는 설명이 딸려있었는데, 마시기 전에는 무슨 커피가 아마존 폭포같으려구, 했는데 진짜 아마존 폭포처럼 쓰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정말 정확한 비유라며 감탄했다. 불행히도 이날 체해서 저녁도 안 먹은 빈 속이었던 터라, 차마 리필은 못했다. 그래도 집에 가는 길에 다리가 후들후들.

다른 커피집들은 신 맛이 강한 커피가 대부분이었다. 로스팅을 약하게 하면 신 맛, 강하게 할수록 쓴 맛이 강해진다던가. 아직은 커피의 신 맛이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껏 맛있다고 해서 찾아가 본 커피집들 중에서는 단연 1등. 고대 들르는 날마다 가게 되는 건 아닐지.

ZERO7 - This fine social scene 음악

Zero7의 음악을 나름 정의내리자면, 

차분하고 우아한 그루브!라고나 할까.

거의 모든 곡들이 아름답지만서도 This fine social scene은 특별하다. 반 년 넘게 내 휴대전화 벨소리이기도.

그렇지만 뮤직비디오는 조금 에러. 아무래도 아직은 돈이 없는 듯. 눈을 감고 음악만 듣는 게 더 낫다.

조용한 리듬. 살살 녹아들면서도 담백한 보컬. 중용의 미, 그 자체다.



시간이 나를 비웃는다


' 내가 깨어 있을 때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긴 악몽들이 거꾸러져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가하였다.'

< 김승옥 '무진기행' 중에서 >


무진기행을 다시 읽다가 발견한 문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저런 느낌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내 시간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도록.

물론 지금 당장은 '공부해!!'라는 소리로도 읽히긴 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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